음력으로 정월 초하루인 설날 아침에, 남의 집 여자가 집에 제일 먼저 오면 일년 동안 재수가 없다고 하는 미신이 있었다. 그 말을 여성비하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오히려 배려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정월 초하루는 여자가 가장 바쁜 날이지만 남자가 할 일은 딱히 없는 날이다. 농사일도 없는 계절이고 명절이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차례를 모셔야 하고 음식 준비를 하다 보면 남의 집에 갈 일이 종종 생긴다. 추운 날씨에 손이 바쁜 여자가 뛰어가기는 쉽지 않다. 일손도 모자라지만 걸음도 느린 여자가 병풍이나 다른 제수용 비품을 가지러 가다가 언 땅에 미끄러질 수도 있고 바쁜 아침에 시간도 더디다. 그러니 손이 놀고 있는 발빠른 장정이 움직이는 게 좋다. 그래야 무거운 물건도 거뜬히 옮겨 올 것이다.
하지만 새해 첫날이자 명절아침부터 남자가 심부름을 하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설날 아침에는 여자가 남의 집에 먼저 가는 게 아니라는 경고를 주어 명절 일을 더불어 나누도록 만든 가르침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냥 가르치면 듣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니 재수가 없다는 말을 앞세워 지키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새해 첫날부터 힘든 일은 남자가 앞장서다 보니 추석날 아침에도 저절로 남자가 집 밖으로 뛰는 일을 하게 되었고, 명절 차례뿐만 아니라 제사에 관한 일은 남자가 주도하게 된 것이다.
또 '설날아침에 청소를 하면 복이 나간다'는 미신이 있는데 그것도 같은 의미로 여성을 배려한 말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설날에는 청소할 시간이 없다. 차례 때문에 집안 대소가들이 다 모여드니 여자는 차례상 차리고 음식상 내기도 바쁜데 언제 청소할 시간이 있겠는가. 그러니 청소는 하지 않아도 좋다는 허락을 공식적으로 내린 말이다. 청소라면 그믐날에 빈틈없이 한 일이니 하루쯤은 여성을 청소에서 해방시켜 준 미신이다. 그믐날 청소를 얼마나 철저히 했으면 묵은해에 먹던 음식마저 다 없애려고 남은 반찬을 모두 찬밥에 섞어 먹으려 한 일이 오늘날 '비빔밥'이라는 이름으로 남았을까.
설날아침에 지켜야 할 미신은, 미신이 아니라 아름다운 믿음이다. 미신을, 잡다한 믿음이라 버리지 말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합리적인 분석과 인간의 심성을 들여다보는 헤아림이 있다. 다가오는 설날에도, 사라져가는 미신을 지키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온가족 모두 즐거운 명절을 보내면 좋겠다.
신복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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