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취임사

역대 미 대통령들의 취임사는 숱한 명문장을 남겼다. 역경을 딛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들은 취임연설을 국민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그리고는 이 기회를 활용해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를 던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미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세계 대공황이 극한으로 치닫던 1933년 1월이었다.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사회는 무겁고 어두웠다. 후버를 누르고 당선된 그는 이런 어둠을 걷어내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연단에 섰다. 그는 취임연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이 위대한 국가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이번 위기도) 잘 참고 견딜 것이고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며, 번영할 것이다. 우리가 오직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 그 자체"라고 역설했다. 국민들에게 두려워 말고 경제 재건을 위해 나아가자는 뜻을 전한 것이다.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동서 냉전이 한창 무르익던 1961년이었다. 공산주의와 전쟁에 대한 공포가 미국민들에게 드리워 있었다. 미국민들은 국가가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기대했다. 케네디는 역설적이었다. 그는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라"는 명문장을 미국민 가슴속에 새겼다.

반면 1841년 취임한 윌리엄 해리슨 대통령은 최악의 취임연설로 그 자신이 희생양이 됐다. 그의 취임연설은 무려 8천445자에 달했고 두 시간에 걸쳐 지루하게 이어졌지만 알맹이가 없었다. 눈보라 속에 방한모도, 코트도 걸치지 않은 채 연설을 한 그는 이로 인해 폐렴을 얻어 취임 한 달 만에 숨졌다.

21일 오전 1시 30분(한국시간) 버락 오바마 미 44대 대통령이 취임식을 갖는다. 대통령의 취임연설은 1789년 조지 워싱턴이 135단어로 된 짤막한 연설을 한 후 220년째를 맞은 미국의 전통이 됐다. 미 대통령의 취임사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가늠좌가 된다. 지금의 경제 위기는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세계 대공황기에 비유된다. 게다가 오바마는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란 상징성을 갖고 있다. 세계 대공황에 버금간다는 경제 위기와 오랜 인종 차별의 역사를 가진 미국에서 오바마가 취임연설에서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지 세계인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정창룡 논설위원 jc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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