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학업성취도 평가결과 공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객관적인 자료 수집과 실효성 있는 지원을 통해 하향평준화하고 있는 교육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시작부터 꼬인 셈이다. 언론이 '임실의 기적'이라고 치켜세웠던 그곳에서 '성적 조작' 의혹이 제기되더니 그 파문이 대구, 공주를 찍고 부산, 서울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교과부는 부랴부랴 196만여명이나 응시한 평가의 결과를 전면 재조사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새로 평가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했다. 또 철저한 재조사를 위해 인근 학교와 교차 점검토록 하고, 불시에 감사 팀까지 투입한다고 하니 해당 학교와 교육청들은 '용의선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신세가 됐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이번 사태의 핵심은 겉보기엔 '성적 조작'에 있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교과부의 무리한 '평가결과 공개'에 있다고 본다. 평가결과 공개는 과열된 성적경쟁 풍토 속에서 지역 및 학교 간 경쟁을 더욱 부추기고 서열화를 고착화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전교조와 일부 시민단체들이 일제고사 및 평가 결과 공개에 반대를 했고, 시도교육청들도 교과부에 전수 평가 결과 공개에 신중해 줄 것을 당부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현실에 적용되면 엉뚱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과거의 정부들이 쏟아냈던 교육개혁 정책의 실패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정부의 교육정책의 핵심인 '경쟁과 효율'은 교육에 있어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가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학교와 학생들을 '점수'로 줄 세우는 식의 정책은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당장 이번에 평가결과가 공개되면서 벌써 교육청, 학교별로 성적 올리기 경쟁이 불붙게 됐다. 내년 평가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개별 학교 성적 공개(2011년)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과부는 2011년부터 성적 평가 향상도를 인센티브 제공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배부 기준에도 연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런 정책들은 교육감(교육장)은 교장들에게, 교장은 교사들에게 평가 준비에 매달리도록 닦달하게 할 것이다. 학교에선 지필고사 점수 올리기에 전념하게 될 것이고, 부모는 자녀가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학원으로 등을 떠밀게 된다. 결국 전인교육, 창의력 계발, 특기적성 교육은 '교육지표(指標)' 액자 속의 빛바랜 글씨로 남게 될 것이다.
핀란드 사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핀란드는 3년마다 실시되는 국제학력평가(PISA)에서 2000년부터 3년 연속 최고성적을 냈다. 핀란드 교육은 수월성과 평등성을 모두 달성한 보기 드문 경우이다. 성적표에서 등수를 없애는 대신 스스로 공부하게 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와 처지는 아이가 한 교실에서 각자 수준에 맞게 공부하도록 하고 있다. 핀란드는 수차례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세운 장기교육계획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치킨게임'(chicken game)이란 용어가 있다.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것으로 도로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치킨)이 지는 경기이다. 어느 한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자멸하게 된다. 우리의 교육이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이 된다면 희망은 없다.
김교영 사회1부 차장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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