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기는 독도] '여름밤의 학대자' 깔다구

자연환경-곤충①

▲
▲ '깔따구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독도관리사무소 직원이 어업인숙소의 방충망을 점검하고 있다.
▲ 지난해 여름 여성방송인이 독도에서 깔따구에 물려 흉터자국이 촘촘한 팔을 들어보이고 있다.
▲ 지난해 여름 여성방송인이 독도에서 깔따구에 물려 흉터자국이 촘촘한 팔을 들어보이고 있다.

들리는가. 바람과 파도소리 사이사이에 섞여 사각거리는 소리. 아니면 고개 너머 물골 앞에서 지절거리는 소리가. 땅을 섬기고 자연에 몸을 맡긴 사람들은 예지의 가슴을 지닌다. '사각거리고' '지절거리는' 미물(微物)들과 그 소리를 그들은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과 가시권(可視圈) 밖의 형상, 귀에 들리는 소리와 가청권(可聽圈) 밖의 소리, 낱낱의 형상과 소리는 가슴으로 보고 듣는다. 그런 존재만이, 조물주로부터 관리를 위임받은,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독도에는 93종의 곤충이 있다. 2006년 5월 환경부 자연보전국은 그렇게 발표했다. 그 이전 2000년까지는 53종이 발견되었다. 6년간 40종이 새로 발견 추가된 것이다. 조사에 제약을 받는 독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얼마나 더 많은 곤충이 추가될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조사한 곤충들을 분류해보면 딱정벌레목(目) 곤충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자들이 이들 곤충을 연구한 결과, 뒷날개가 퇴화되어 비행할 수 없는 보행성 딱정벌레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학자들은 독도가 보행성 곤충들의 출현시기보다 훨씬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학자들 논문 속에서 곤충들은 1천600만년 전 독도의 비밀을 풀어주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 외등(外燈) 아래 무수히 떨어진 곤충들은 아카데믹하지 못하고 무참스럽다.

독도에 살면서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곤충은 바다모기 즉 '깔따구'라고 부르는 해충이다. 독도의 6월부터 10월 말까지는 '깔따구의 계절'이다. 독도에서 여름밤을 지내고 깔따구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독도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깔따구는 육지의 모기보다 몸체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다. 워낙 작아 날아다닐 땐 눈에 띄지도 않는다. 방바닥이나 벽에 붙어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깔따구들에게 그물에 바람 지나듯 하는 뭍의 방충망이나 모기장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날아다니는 이들에게는 어떤 소리나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깔따구떼는 사람들 맨살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손목·발목·목덜미·귓바퀴 등이 주요 포인트. 떼로 달려드는 이 미물한테 일단 물리면 그 가려움증은 긁지 않고 못 배긴다. 한번 긁기 시작하면 최소한 1박 2일은 긁어야 한다.

확대경으로 보면 이 해충은 드릴 모양의 주둥이를 가지고 있다. '드릴 주둥이'는 순식간에 살갗에 박힌다. 따끔하거나, 손바닥으로 쳐서 잡으면 피가 묻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긁는 것이 고작. 물파스 따위는 뭍의 모기에게나 효과가 있을 뿐이다.

지난해 여름 깔따구가 기승을 부렸다. 견디다 못해 창문과 출입문을 모두 닫고 모기약을 뿌렸다. 사람이 먼저 질식해 쓰러질 지경이었다. 온몸의 물린 자리는 가려움증으로 아득하고 막막했다. 발목과 팔등을 피가 나도록 긁어도 계속 손이 갔다. 할 수 없이 밤 1시에 숙소 앞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시원하니까 참을 만했다. 물짐승처럼 밤새 물속을 들락거리다 날을 새웠다.

깔따구에 물리면 대부분 물린 자리가 곪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팥알만한 고름주머니가 조롱조롱 매달리기도 한다. 그것을 터트리면 모두 흉터가 되어 오랫동안 반점처럼 남는다. 지난해 여름 독도경비대장은 대낮에 방문객을 안내하다 깔따구한테 물려 울릉도 병원을 다녀왔다. 공사 인부 한 사람은 상태가 워낙 심해 며칠간 육지로 나가 입원한 후 다시는 독도에 들어오지 않았다.

깔따구는 독도뿐만 아니라 울릉도나 뭍의 해변에도 있다. 유독 독도가 극성을 부리는 것은 괭이갈매기 똥이나 사체가 많고 특히 해조류인 대황이 바닷가로 밀려와 곳곳에서 썩어 깔따구 번식에 좋은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곧 깔따구가 덤빌 시기이다. 하늘은 미물도 그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 내놓는다고 했다. 생각이 짧은 인간으로서 무한량한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이나 미물이나 다 나름의 쓰임이 있을 터.

다만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기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미물도 챙기는 것이다. 때론 성가시더라도…. 그것이 진정 주인된 도리이다. 곤충, 어차피 그들도 독도, 우리의 이웃이니까. 이 밤, 낮에 본 무당벌레 두 마리는 사랑을 끝냈을까?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