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부터 보름 전날 오후, 지리산 해발 1,100m 높이의 한 바위굴 옆에서 어미 반달곰 한 마리가 숨진 채 발견됐다. 150여m 떨어진 다른 굴에서 새끼를 낳아 키우다 열흘 전 이사 온 곰이었다. 동면 중에 출산하고, 냉기'습기로부터 새끼를 지키기 위해 쉴 새 없이 낙엽을 그러모으고, 결국엔 새끼를 물고 더 나은 굴을 찾아 옮기고 하느라 체력이 고갈돼 버린 뒤끝이었다.
그리고 사흘 뒤엔 거기서 15m쯤 떨어진 바위틈에서 아기곰 또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돼 혼자 생존하기 어려울 것임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길 간절히 기도했던 그 새끼였다. 어미곰의 모정에 눈물지으며 조마조마해 했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한번 더 무너져 내렸다.
보름 전 같은 날 너덧 시간 후의 저녁시간, 경남 김해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이번엔 스무살 짜리 여대생이 주검으로 발견됐다. 부모의 돈에 자신이 아르바이트해 보탠 금쪽같은 650만 원을 보이스피싱으로 순식간에 날려버린 뒤끝이었다. "잘 알아봐야 하는데 바보처럼 사기당해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유서가 나왔다. 작은 돈은 아니나 목숨보다 더 귀할 수야 없는 것일 텐데 절망감이 얼마나 컸으면 저러고 말았을까, 듣는 이들의 가슴이 한꺼번에 허물어져 내렸다.
지난 주말에는 딸을 죽이고 스스로도 목숨을 끊은 서울의 한 아버지 이야기가 뭇사람들 가슴을 후벼팠다. 넉넉잖은 집안 살림 때문에 손수 등록금을 벌어야겠다며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던 딸이 그 밑천으로 빌린 일숫돈 300만 원이 화근이었다. 장사가 여의치 않자 빚은 일 년 사이 1천500만 원으로 불었고 급기야는 매춘까지 강요당했다는 것이다. 흡혈귀 같은 사채업자가 치를 떨게도 했지만, 가난이 원수 된 저 처참함이 속을 더 아리게 했다.
이런 중에 지금 시민들은 깨끗함'도덕성'당당함을 상징으로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부패 의혹 사건의 터널 속을 통과하며 또 한 번 가슴 무너지는 중이다. 그의 승리를 통해 우리의 새 가능성을 보고 환희했던 많은 사람들 영혼에 휑하니 구멍이 뚫리고 그 바람길로 삭풍이 몰아치는 것이다. 같은 당 정치인은 '성수대교 붕괴'를 떠올렸다지만 순수한 시민들이 받는 상실감은 오히려 그마저 비할 바가 아니다. 과연 상실의 시기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