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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백두를 가다] 역사속의 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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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물류의 소통지인 삼강은 군사적으로도 요충지다.

옛날부터 싸움이 많았고, 땅 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다.

삼강을 끼고 있는 산(비룡산)에 그 흔적이 있다. 바로 원산성(圓山城)이다. 성 아래 마을의 지명도 성저(城底)마을(용궁면 향석2리)이다. 성 부근에는 적잖은 고분들이 흩어져 있으며 봉수대와 군량미를 보관한 군창지(軍倉址)도 남아 있다.

백제의 시조 온조가 남하할 때 마한 최후의 보루인 삼강 일대를 점령한 후 백제를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고, '삼국사기'에도 상당기간 삼강 일대가 백제의 요새로서 고구려, 신라 등과 충돌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서기 190년 백제의 왕이 신라의 서북변경인 원산성을 점령하자 신라 장군 구도가 기병 500명을 이끌고 와 백제에 빼앗겼던 원산성을 되찾았다. 이후 백제 소고왕은 세 차례나 원산성을 공략해 신라군을 격파했고, 그뒤 고구려의 문자왕도 원산성을 공격했다. 세월이 지나 신라 효공왕(904년)때에는 예천과 용주(지금의 용궁면)지방이 후고구려 땅이 되었고, 927년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땅인 용주를 공략하자 신라 경순왕이 군사를 보내 왕건을 도왔다.

이러한 기록으로 볼때 예천은 북진하는 신라와 남하하려는 고구려, 동진하려는 백제가 대충돌한 군사적 요충지인 것은 확연했다.

그 옛날 땅 싸움은 무척이나 처절했던 것 같다. 삼강주막 옆 낭떠러지의 이름이 '피끝이'이다. 지금도 피끝이에 비가 많이 오면 성저마을에 아비규환과 원혼들의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또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원산성을 점령하기 위해 남하하려다 도중에 전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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