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경쟁 굿판을 치워라

分割統治(분할통치) 또는 디바이드 앤 룰(divide and rule)은 고대 로마 때부터 있었던 格言(격언)이다. 나눠서 다스리라는 것이다.

피지배자 집단의 민족 감정이나 종교, 사회적 입장, 경제적 이해 차이를 이용해 대립하도록 하면 그들은 서로 싸운다. 통일된 의견이나 세력을 만들어 지배층에 맞설 겨를이 없다.

지배자에겐 매우 달콤하고 효율적인 피지배자 無力化(무력화) 수단이다.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 통치를 할 때 자주 이용했다. 대영제국의 인도-파키스탄 분할통치가 대표적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로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느라 오랫동안 영국에 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단일민족인 '대~한민국'에도 분할통치 수법은 유용하다. 정치인에게 지역감정은 치명적 유혹이다. 지역감정을 부추겨 영'호남으로 나눠 놓으니 한나라당 민주당은 선거에서 떨어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牛溲馬勃(우수마발) 공천해도 유권자들은 당선시켜준다. 시골 사는 유권자는 돌아볼 필요 없이 서울 사는 실세 눈에 들어 공천만 받으면 그만이다.

여기다 디바이드 앤 룰 수단이 하나 더 생겼다. 국책 사업으로 지방자치단체 간 유치 경쟁을 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지자체 간 경쟁을 부추겨 재미를 본 정권은 노무현 정권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참여정부는 돈 3천억원과 양성자가속기를 미끼로 혐오시설을 황금거위로 졸지에 바꿔 놓았다. 경북 경주'울진'영덕과 전남 영광이 경쟁을 벌여 주민투표를 통해 경주로 결정됐다.

예전이라면 방폐장 유치에 실패한 지역 주민들은 정부를 원망했다. 그러나 경쟁을 통해 결정하자 그들은 정부 대신 자기 지역 지도층과 경쟁 지역을 비난하고 憎惡(증오)했다.

지자체 간 경쟁을 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내 18년 표류하던 방폐장 후보지를 선정한 서울의 공직자들은 대거 훈'포장을 받았다.

신이 난 그들은 각종 국책사업을 추진하면서 또 경쟁시켰다. 무주로 간 태권도공원, 마산과 인천이 후보지가 된 로봇랜드, 인천이 승리한 자기부상열차가 그랬다. 경북과 대구는 매번 패했다. 경북'대구는 정부를 원망하기보다 무주'마산'인천을 猜忌(시기)했다.

최악은 혁신도시 건설과 공기업 지방 이전을 둘러싼 지자체 간 과당 경쟁이었다. 서로 혁신도시와 알짜 공기업을 유치하려 혈투를 벌였다. 시'도 간 싸움뿐 아니라 시'군'구 간 싸움도 벌어졌다. 전국이 갈가리 찢어졌다.

수천개 공기업과 대기업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판에 고작 20여개 남짓한 공기업 유치에 지방은 운명을 걸다시피했다. 소지역주의에 질린 지방 정책 입안자들은 추가 정책을 내놓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지자체를 경쟁시키는 그 수법은 지속되고 있다. 첨단의료복합단지가 그렇다. 이번엔 주민투표나 정부 결정이 아니라 특별법까지 만들어 후보지를 결정한다. '첨단의료복합단지 지정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후보지 선정 방법이 희한하다. 전문가 240명을 평가단으로 정해 무작위로 뽑은 60명이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60명 평가단이 어느 지역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순위가 결정된다. 인기 투표 격이다.

이런 선정 방법 탓에 대구'대전'오송'원주'양산은 1년 넘게 진을 다 빼는 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각 도시의 거리는 플래카드로 넘친다. 매체 광고도 등장했다.

여기에 정치인이 가세하면서 온갖 說(설)로 어지럽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대구가 정치적 공격의 주 타깃이다.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볼모로 '대구로 결정되기만 해봐라'고 벼르며 청와대와 한나라당을 압박하는 곳도 있다 한다. 어디로 결정되든지 후유증이 결코 작지 않으리라 가늠되는 대목이다.

필자는 선거에서 어느 정당이 이기고 지고에는 관심 없다. 하지만 잘사는 수도권은 놔두고 못 사는 지방끼리 싸우고 심지어 증오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국책사업을 미끼로 한 지자체 간 경쟁을 시키는 '굿판'을 걷어치워라.

최재왕(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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