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었다. 창비에서 지난해부터 청소년문학상 공모를 하고 있는데, 김려령의 '완득이'에 이어 두 번째로 수상한 작품이다. 첫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완득이는 여러 면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2008년 버전 같은 느낌을 준다. 우울한 소재이지만 무척 경쾌하게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완득이의 매력이었다. 이번 위저드 베이커리도 완득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주인공은 말을 더듬는 고등학생 소년이다.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빵집을 매일같이 이용하는 단골고객이기도 하다. 밤마다 빵집에 가서 이 빵 저 빵을 고르는 소년. 빵을 무척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 힘들어서이다. 어느 날은 이것저것 빵을 고르다가 재료를 묻는 소년에게 빵집주인은 그 빵은 갓난아기의 간을 말려서 빻은 가루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밀가루와 3대 7 정도 비율로 섞었다나. 젤리처럼 보이는 것은 고양이 혓바닥 3종 세트란다. 페르시안'샴'아비시니안. 웨이퍼는 비스킷 사이에 티티새의 똥을 얇게 펴 바른 것이란다. 겉에 바른 시럽은 까마귀의 눈알을 우려 만든 건데 단맛과 쓴맛, 신맛이 에티오피안산 커피처럼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농담으로만 듣기에는 뭔가 섬뜩한 위저드 베이커리는 이토록 독특한 빵집이다.
소년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소년은 회사원인 아버지, 아버지와 재혼한 초등학교 교사 배 선생, 배 선생이 데리고 온 딸 무희 이렇게 네 명의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없는 가족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가정엔 비밀이 있다. 소년의 친어머니는 주인공 소년을 아주 어릴 때 몇 차례나 지하철역에 버린 적도 있다.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 아버지와 배 선생, 무희에게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소년과 위저드 베이커리 주인인 제빵사 등 일견 단순한 구도이면서도 흥미롭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느 날 소년은 빈손으로 집에서 뛰쳐나온다. 소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집을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 갈 곳이 없는 소년은 얼떨결에 위저드 베이커리로 뛰어든다. 베이커리의 주인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오븐 속에 소년을 숨겨준다. 그런데 소년이 제발 스위치만은 켜지 말라며 들어간 오븐 속은 별세계였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주인인 제빵사는 마법사였다. 종업원인 소녀는 밤이면 뻐꾸기시계의 파란 뻐꾸기로 돌아가는 새이기도 하다. 24시간 개방하는 이 빵집의 제빵사는 보통 손님을 위해서는 보통의 빵을 만들지만 직접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 위저드 베이커리 닷컴에서는 아주 특별한 물건을 판다. 저주인형이나 사랑에 빠지게 하는 초콜릿 같은 것을. 위저드 베이커리 쇼핑몰을 찾는 손님은 무척 많다. 가끔 판매한 물건에 대해 AS를 요청하며 항의 방문하는 손님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서 위저드 베이커리는 종적을 감출 필요가 있을 때면 몇 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한다.
이 책은 마치 인터넷 소설처럼 가볍고 발랄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아무리 좋은 주제라도 진지하게만 접근하면 대중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요즘 청소년 세대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심각한 이야기라도 재미있게 접근하는 기술이 필요할 것 같다. 판타지는 가혹한 현실을 견딜 수 있도록 위로해준다. 만약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계속 우리나라에서 일본 소설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그 소설들은 굉장히 가볍다. 우리나라 작가들도 이런 작품을 쓸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공지영의 '도가니' 같은 작품은 인터넷에서 연재되면서 출판 후에도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이다. 변화된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비청소년문학상도 그런 점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재능 있는 작가들이 좋은 내용을 재미있게 쓰는 것이 책과 독자의 거리를 가깝게 해줄 것이다.
신남희(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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