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진화하는 도시 디자인

"저 건물 멋진데, 어느 회사야?"

5년 전이었다. 대구 남부정류장 옆에 (주)유성건설 사옥(수성구 만촌동)이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횃불처럼 타오르는 형태인데다 태양과 보는 이의 각도에 따라 색 유리도 다르게 보이는 파격적인 외관 때문이었다. 당시 대구 도심에 이같이 '튀는' 빌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설계자 이대진 교수(영남대 건축학부)는 "의도적으로 건물 자체를 기울였는데 수성구청으로 혹시 건물이 쓰러지는 것이 아닌지 문의하는 전화가 적잖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대구 도심에는 '디자인 혁명'이 진행 중이다. 최근 지어지는 빌딩들은 앞다퉈 독특한 형태의 외관을 드러내고 있고 학교, 공장, 심지어 각종 공공시설물도 '디자인'을 입고 있다.

◆빌딩, 튀어야 산다?

(주)유성건설 사옥을 시발점으로 최근 5년 사이 대구에는 보는 이의 눈길을 확 사로잡는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거나 지어지고 있다.

독특한 디자인 빌딩을 언급할 때 2007년6월에 준공된 대한주택공사 대구경북본부(달서구 도원동)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빌딩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이른바 '공중부양'을 떠올리게 된다.

4층 건물 위 가느다란 기둥이 연결돼 있고 그 위쪽으로 4면이 모두 유리로 된 건물이 우뚝 솟아 있는 형태로 아래쪽 4층짜리 건물과 유리건물은 서로 별개의 건물이다. 상단 몸체는 거대하고 하부 중앙골조는 가늘어서 마치 건물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4층 상부에 야외 공원이 있고 병목처럼 생긴 5층 상부는 열린 공간으로 활용되며 6층부터 13층까지는 사무 공간으로 쓰인다. 이성도 사업계장은 "뒤편에 낮은 주택들이 많아 그들의 조망권을 확보하기 위해 5층 부위를 옴폭하게 만드는 구조를 택했다"고 말했다. 개성적인 형태로 2007년 대구시우수건축물상 등 각종 상을 휩쓸기도 했다.

올해 1월 팔공산 인근에 개관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동구 용수동)도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디자인이다. 이 건물은 2'28대구지하철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진 건물인 만큼 지하철이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을 갖고 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조형물인 셈.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장문희 교육팀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체로 건물이 특이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처음에 실내스키장인 줄 알았다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3월에 지어진 애플타워(대구 수성구 범어동)도 아기자기하고 예쁜 느낌을 주는 빌딩이다. 마치 사과가 갈라지는 형태를 닮은 외관은 행인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L'자 형태의 유리건물과 일반 유리건물이 별개인 것처럼 느껴지는 독특한 디자인이다. 건물 가장 위쪽에 사과 마크를 설치한 것도 이색적이다.

조만간 선을 보일 빌딩들도 관심거리다. 올 12월 준공할 동대구우체국 신축 건물은 한 눈에 봐서 'L'자 형태를 띠었다. 주변의 녹지와 토지 환경과 최대한 조화를 이루기 위한 형태다. 3층까지의 저층부는 부속동으로 우체국으로 사용되고 4~9층 고층부는 체신청이 들어갈 예정. 특히 3층을 트인 공간으로 만들어 공원과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방침. 이 같은 화려한 디자인의 빌딩을 통해 우체국은 21세기 최첨단을 달리는 기관이란 이미지를 심고자 한다.

올해 12월 준공 예정인 LIG손해보험 대구사옥(수성구 범어동)은 처음 뉴욕 맨해튼의 빌딩을 컨셉으로 잡았다. 지상 21층, 지하 7층의 이 건물은 4면이 통유리로 채광을 극대화하고 위쪽을 날렵하게 만들어 비상하는 이미지를 줄 예정. 또 깔끔한 외관을 위해 간판도 일반적인 것이 아닌 활자만 새겨진 방식으로 설치할 계획이다. 특히 중간에 LED조명을 단 누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밤에 마치 전광판처럼 보이게끔 해 범어네거리의 명물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디자인기관으로 통유리를 최대한 활용해 개방성을 살린 대구경북디자인센터나 'F'자 형태의 통유리건물에 양 끝으로 다양한 색상의 판넬로 꾸며진 시지 1st 등도 개성 넘치는 디자인빌딩으로 꼽힌다.

◆도시 전체가 디자인 열풍

빌딩들만 디자인 경쟁이 붙은 것은 아니다. 기존 천편일률적으로 성냥갑처럼 지어졌던 학교나 공장 등도 최근 디자인이 가미되고 있다.

지난해 3월 개교한 관문초교(북구 매천동)는 멀리서도 눈길을 끌게 한다. 갈색빛의 벽돌과 은회색의 아연 골강판이 조화를 이뤘고 노란색 콘크리트의 층간 테두리로 포인트를 줬다. 옥상 난간은 붉은 주황색으로, 현관은 귤색으로 치장하는 등 건물 전체가 색깔 잔치를 벌이고 있다. 왕선초교(달성군 다사읍)도 건물이 예쁘다. 전체적인 갈색 벽돌에 노란색 패널 테두리와 가운데 은회색 패널로 포인트를 줬다.

최근 민간투자사업(BTL)으로 지어지는 학교들은 이와 같이 화려한 색상과 독특한 구조로 탄생하고 있다.

최근 공장들도 예외가 아니다. 어지럽게 공구가 널려있고 컨테이너 박스같이 획일적인 창고형 공장은 이제 옛말이다. 성서공단에서 산업용 로봇을 제작하는 (주)유진엠에스는 외관이 전체적으로 아이보리 색상의 우레탄 판넬에 붉은색의 '켄틸레바'(수직으로 된 구조에 밖으로 돌출된 발코니 형태의 구조물)와 유리, 목재 등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휴대폰 부품업체인 (주)쉘라인은 건물 외관이 대부분 유리로 구성돼 개방적이고 자율적인 회사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경영자들은 이런 디자인이 가미된 공장을 통해 직원들의 애사심과 효율성을 높이고 있는 것.

도심에 각종 공공시설물도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중전화 부스. KT는 2007년부터 기존의 네모난 부스가 아닌 빨간색이란 원색의 곡선형 부스와 통유리가 들어간 광고형 부스, 이른바 '말뚝' 부스 등을 매년 점진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이를 통해 회사 이미지 쇄신과 도시 미관성을 높이고 있는 것.

앞으로 가로판매대도 상당 부분 바뀔 예정이다. 기존 가판대는 투박한 형태였지만 새로운 가판대는 양쪽으로 접이식 공간을 두어 주간에는 본래 기능을 하고 야간에는 접도록 해 공간 활용도를 높인다. 또 몸통부분은 도시경관에 맞게 조형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또 공공디자인 사업도 활발하다. 월드컵경기장 인근 지하차도에 2011대구육상선수권대회에 맞춰 이미 태양광 발전시설을 이용한 덮개를 설치했고 앞으로 앞산 식당들의 상권을 높이기 위한 웰빙거리 조성, 체계적이고 깔끔한 안내를 위한 성서단지 통합사인시스템 등이 예정돼 있다.

이 교수는 "지방자치단체나 건물주들이 과거에는 상업적인 측면만 고려했지만 이제는 디자인이 곧 경쟁력이란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며 "외관 디자인이 좋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홍보와 이미지 효과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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