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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정현주의 휴먼토크] 나는 전화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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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 질환이 의심될 만큼 큰 눈을 가진 성실해 보이는 아가씨가 진료실로 들어온다. 잡티와 여드름 흉터 때문에 내원한 그녀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재학 중인 재원이었다.

동행한 중년 부인의 어머니는 기품이 있었고 내적 인프라가 충분한 자랑스러운 딸의 외모를 위해 적극적으로 치료에 의욕도 보였다. 방학동안 치료를 마쳐야 하니 서둘러 달라고 재촉하였다. 내 속에는 이 나이가 되도록 포기 못한 꿈이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닌 아메리칸 드림이다.

다음 세상에는 미국의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계층으로 태어나 미국 사회의 주류가 되고 싶다는 허황한 꿈을 아직도 주절대는 나로서는 미국의 최우수 대학에서 공부하는 그녀가 부럽다 못해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그러니 얼마나 정성껏 그녀를 치료했겠는가? 스스로 감탄할 만큼 성의껏 레이저 시술을 한 후 며칠이 지났다. 휴일이라 침대에서 뒹굴며 신간 소설을 읽고 있는데 휴대폰이 애절하게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받으니 아이비리그 재원의 어머니다. 얼굴이 붓고 붉고 가렵고 견딜 수가 없단다. 그런데 오늘은 공휴일과 일요일이 이어지는 연휴이니 난감해서 전화한다면서 울상을 짓는다. 그녀를 휴진일인 병원으로 불러 상태를 파악하고 비상약과 주사로 처치해주었다. 아마 레이저 시술 전에 바른 마취약에 접촉성 피부염이 온 것 같았다. 그녀와 가족이 느끼는 두려움과 염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예측도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한 것은 연휴 동안 아침저녁으로 회진전화를 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처치를 알려주고 심리적으로도 위로 격려하였다. 그 대가로 내게 돌아온 것은 그녀의 맑은 얼굴과 그 가족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명의라는 타이틀이었다. 나는 단지 전화 몇 통 하였을 뿐인데 말이다.

오부치 게이조라는 일본 총리는 지명 당시는 별명이 '식은 피자'라고 불릴 만큼 지명도가 낮은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정치인이었다. 그런 그가 떠날 때는 지지율 50%를 넘기고 시간이 지날수록 저력을 발휘하는 느린 소 리더십의 표본이 되었다. 이렇게 된 비결 중 하나가 전화라고 한다. 각계각층 인사, 여야 의원, 유명인, 일반인, 기자,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전화를 걸어 칭찬, 위로, 격려, 사과 등 다양한 내용을 전하면서 오부치폰이라는 유행어를 남기기도 했다.

피부미용이라는 진료과목의 특수성 때문에 다른 과와는 달리 임상경과나 회복 과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감성의 진료이다. 간혹은 레이저 시술이나 피부 처치를 받고 난 후 예기치 못한 과정 때문에 환자들이 실망하여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격앙된 목소리로 진료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저런 당황스러운 내용을 병원 홈페이지에 상담글로 남기면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면 진료실에서 이해시키고, 홈페이지 댓글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진료 후에 따로 전화하여 환자의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시켜 주면 금상첨화다.

아직도 의사의 권위를 인정하고 의사의 전문성을 높이 사는 고마운 분들이 많은지라 진료시간 외에 전화 하면 마음을 더 잘 열어주고 서로간의 소통이 더 원활하다. 물론 모든 환자를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명의로 등극시켜 주는 전화를 되도록 아끼지 않고 많이 하려고 애쓴다. 덕분에 진료시간에 쫓기는 담당 간호사에게 매일 타박 맞는다. "원장님! 또 전화하세요?"

053)253-0707 www.gounm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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