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여성'이라는 조금은 낯설고 어색한 용어가 있다. '외국에서 국내로 이주해 온 뒤, 국내에 계속해서 거주하고 있는 여성'을 뜻하는 용어인데, '국내에 취업 중인 외국인 여성' '한국인 남편과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외국인 여성'뿐만 아니라, '귀화라는 국적법상의 절차를 통해 우리나라 국적을 취득한 여성'까지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용어이다. '이주 여성'이라는 용어를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필자 또한 아무 생각 없이 '외국 여자'라고 불러왔던 그녀들이 바로 '이주 여성'이다.
필자는 3월부터 대구지방변호사회 산하의 소위원회인 '이주여성'근로자 법률구조위원회'에서 간사 역할을 맡아 왔는데, 6월에는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를 통해 한 몽골인 이주 여성으로부터 '이혼 소송을 도와 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받았다. 초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직접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한 그녀는 어눌한 한국말로 필자에게 차분하게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였다. 한쪽 손으로는 한(韓)-몽골어 사전을 뒤지면서, 한쪽 손으로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연방 훔쳐내면서, 그녀가 필자에게 전달한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였다.
몽골에서 대학에 재학 중이던 그녀는 몇 년 전 결혼정보회사의 소개로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후 대구로 시집오게 되었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국의 문화와 가정생활에 익숙하지 못했던 나머지, 그녀는 너무도 많은 행동 양식의 차이로 인해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국인 남편은 그녀를 이해와 관용으로 포용해 주기는커녕 그녀와 결혼할 때 결혼정보업체에 지출한 비용을 들먹이면서 그녀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한국인 남편은 심지어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하여 결혼 생활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는데, 그러는 사이에 강제로 낙태까지 당했다는 것이었다.
20대 초반의 꽃 같은 나이에 산도 설고, 물도 설은 이역만리 타국에까지 시집와서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폭행당하고 낙태까지 당하는 설움을 겪는 등 그야말로 만신창이의 몸이 되어버린 그녀. 필자는 그녀의 소송 대리인이 되어 이혼 소송을 진행하였고, 그 소송은 '서로 이혼하되, 한국인 남편이 그녀에게 일정 금액의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취지의 결론으로 종결되었다.
소송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물론 그녀도 잘못한 것이 있었다. 문화가 다른 국가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으면 그 나라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녀에게 그러한 노력이 다소 부족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점은 소송의 전 과정을 통해 드러난 한국인 남편의 시각이었다. '그녀가 우리나라보다 수준이 낮은 경제적 후진국의 여자'라는 편향된 관점, '거액의 대가를 국제결혼중개업체에 지불하고 결혼했으니 그녀가 그 대가에 상응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잘못된 관점은 소송이 종결될 때까지 바로 잡힐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났던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무시와 홀대를 받은 것에 대해 적잖게 서러움을 느껴왔다. 이 땅에 온 이주 여성 및 이주 노동자가 수십만 명에 이르는 지금, 서럽고 쓰라린 과거의 역사 속 한 페이지를 그저 부끄럽게 여기며 덮어두고만 있을 게 아니라 오히려 보란 듯이 펼쳐놓고 우리 스스로가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자세로 이주 여성 및 이주 노동자들을 대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주 여성'이라는 용어를 알게 된 후부터는 '외국 여자'라는 용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외국 여자'라는 4음절의 단어 속에는 그들을 영원한 '남'으로 갈라놓는 편향된 시각이 깃들어 있기에, 그리고 '우리'가 되기 위해서 이 땅에 건너온 그녀들을 함부로 '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겠기에….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한가위에 두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처럼 이 땅 위의 사람들 누구나가 '너' '나' 따지지 않고 둥글둥글 다 같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풍요롭고 즐거운 명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경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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