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름 뿐인 '노인보호구역'…예산 부족 사업중단 상태

'스쿨존'과 달리 국비 지원 없어

노인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만들어진
노인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만들어진 '실버존'이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대구 서구노인복지회관 옆 이면도로에 불법 주차한 차량들이 늘어서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8일 오후 대구 서구노인복지회관 인근. 왕복 4차로 위에 '노인보호구역'과 제한속도 20㎞를 알리는 도로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 중간에는 무단횡단을 막기 위한 차단울타리가 줄지어 있었고, 복지회관 옆 이면도로를 따라 붉은 빛의 미끄럼방지구간이 이어졌다.

노인보호시설은 그게 전부였다. 제한속도를 지키는 차량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이면도로는 불법 주차된 차량들로 가득했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다 보니 노인들은 차량들을 피해 길 중간에서 걸었고, 그 옆으로 트럭들이 획획 지나다녔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고 철제 난간이 설치된 어린이보호구역과는 확연히 달랐다.

매일 복지회관을 찾는다는 정모(77)씨는 "말이 좋아 노인보호구역이지 일반 도로보다 다니기가 더 힘들다"며 "걸음이 늦고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는 노인들을 위한 시설은 없는 것 같다"고 불평했다.

노인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도입된 '실버존'(노인보호구역) 사업이 헛걸음을 하고 있다. 사업 자체가 거의 중단된 데다, 이미 설치된 실버존도 관련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탓이다.

대구시는 지난해 동구·서구·강북노인복지회관과 수성구·달서구 노인종합복지관 등 5곳에 노인보호시설을 설치했다. 올해는 동구 팔공노인복지회관과 남구 대덕노인복지회관, 달성군 대구가톨릭치매센터 등 실버존 3곳에 교통안전시설을 조성하려 했지만 기약없이 미뤄진 상태다. 희망근로프로젝트 등 일자리 창출사업과 조기집행사업으로 예산이 몰리면서 아예 예산 배정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

이는 국비가 지원되는 스쿨존과 달리, 실버존은 지자체 예산으로만 이뤄져 후순위 사업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 조성 사업에는 85곳, 국비 61억7천200만원이 투입됐지만 실버존에는 단 한푼도 투입되지 않았다. 지난해 설치된 실버존 5곳도 3곳은 스쿨존과 병행 설치된 곳이었고, 동구·서구노인복지회관 등 2곳에만 1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이미 설치된 실버존도 시설이 미비한 형편이다. 노인보호구역 표지판과 과속방지턱 등 기본적인 도로 정비만 됐을 뿐, 도로반사경·과속방지시설·미끄럼방지시설·방호울타리 등 관련시설 설치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 대구시의 실버존 지정 대상지는 1천329곳에 이르며 이 가운데 실제 설치가 가능한 구역은 30~40곳으로 추산된다.

대구시 관계자는 "실버존 1곳을 설치하는데 1억2천만원 정도가 소요되지만 경제 살리기 등 다른 부문에 예산이 집중되면서 올해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다"며 "내년 2월에 있을 결산 추경을 통해 예비비를 투입하거나 국비를 지속적으로 요청해 사업비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65세 이상 노인들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2005년 26.7%에서 2006년 27.4%, 2007년 29%, 지난해 29.6% 등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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