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걷고 싶은 도시 만들자]…③횡단보도 보행권 되찾아야

"25초면 건널 거리, 지하로 가니 200초 걸려"

2005년 횡단보도가 사라진 반월당네거리. 시민단체들은 100년 역사의 반월당 보행권을 침해당했다며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곳 횡단보도 복원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2005년 횡단보도가 사라진 반월당네거리. 시민단체들은 100년 역사의 반월당 보행권을 침해당했다며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곳 횡단보도 복원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보행권이냐, 지하상가 생존권이냐.'

2000년대 이후 도심 간선도로 지하상가 위에 횡단보도를 긋고 있는 전국 지자체들의 화두다. 지하상가 상인들은 지자체의 '보행권' 우선 정책에 대해 "생존권을 박탈당할 수밖에 없다"며 맞서고 있다.

이 같은 지하상가 반발에 대한 대구시의 대처는 시민단체와 도시 전문가들의 오랜 비판을 받아왔다. 대구시는 한일극장 앞 횡단보도 하나 긋는데 4년을 허송세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부산, 대전, 광주가 '선(先) 보행권, 후(後) 지하상가 활성화'를 택한 것과 정반대. 오히려 대구시는 2005년 지하철 2호선 건립 당시 그나마 있던 두류네거리 3곳, 반월당네거리 4곳, 봉산육거리 2곳의 횡단보도까지 없애는 자충수를 뒀다. 보행권보다 지하상가를 우선한 것이다.

◆보행권지하상가

지난 한 해 대구에서는 한일극장 앞 횡단보도 설치 목소리가 높았다. 4년 전부터 이곳 지하상가 위 횡단보도 설치를 요구했던 시민단체들은 보행권시민연대를 구성해 단체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대구시는 여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대구보행권시민연대 서준호 사무국장은 "한일극장 앞 횡단보도 설치는 교통약자와 정당한 시민들의 보행권을 확보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대구시가 소수 지하상가 상인들의 이권에 휘둘려 시민 권리를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전국 지자체들은 지하상가 조성과 함께 사라졌던 횡단보도를 되살리고 있다. 횡단보도를 되살릴 때마다 진통이 컸지만 보행권에 대한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꺾이지 않은 결과다.

서울은 이명박 대통령의 시장 재직 시절부터 현 오세훈 시장에 이르기까지 2004년 서울광장, 2006년 영등포, 지난달 회현지하상가 위에 횡단보도를 설치했다. 서울 역시 지하상가 상인들의 횡단보도 설치 반대가 극심했다. 급기야 이달 6일 명동에서는 횡단보도를 설치하려는 구청 공무원과 설치 반대를 외치던 지하상가 상인들 간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다. 그러나 서울시와 자치구 입장은 단호하다. 보행권은 도시의 모든 구성원이 누려야 하는 기본권이며, 지하상가보다 우선한다는 것이다.

부산의 경우 지난해 9월 중구 남포동 피프(PIFF)광장과 자갈치시장을 연결하는 왕복 8차로 간선도로에 횡단보도가 개통됐다. 이곳 또한 지하상가 상인들의 '횡단보도 설치 반대 서명 운동'으로 갈등을 빚었으나 결국 복원 쪽에 힘이 실렸다.

대전에서는 중앙로 횡단보도가 17년 만에 부활했다. 600여 지하상가 상인들의 집단 반발 속에서도 2007년부터 2년에 걸쳐 횡단보도 3개가 놓였다. 광주 동구 충장로 3가와 4가를 잇는 횡단보도도 폐지된 지 20여년 만인 2000년 다시 설치됐다. 지하상가 주민들이 시를 상대로 소송까지 벌였으나, 시민 여론에 밀렸다.

◆보행권과 지하상가 공존은 가능한가

지하상가 상인들은 횡단보도 설치로 입게 될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상인들 역시 또 한편의 약자란 것이다. 앞서 서울에서는 지하상가 상인들을 위한 에스컬레이터 설치가 논의돼 왔다. 지난달 12일 회현지하상가 횡단보도 설치 당시, 서울시와 지하상가 측은 주변 6군데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합의했고, 지난달 11일 '남대문로 명동 입구 횡단보도설치 주민공청회'에서도 지하상가에 에스컬레이터와 휴식 공간을 마련하는 방안이 나왔다. 계단을 기피하는 노약자나 장애인도 편하게 지하보도를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대구시 역시 한일극장 앞 횡단보도 설치를 위해 지하상가 에스컬레이터 설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 전문가와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에스컬레이터 설치가 능사가 아니라 근본적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거미줄처럼 얽힌 횡단보도와 지하상가가 윈-윈하고 있는 일본은 횡단보도 하나가 지하상가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기보다 새로운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마련해 장기적 관점에서 활로를 찾았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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