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카페] 울긋불긋 단풍은 우리 마음도 알록달록 물들이고

홍대연씨 가족들의 산행, 홍씨의 아이들 서정(앞)과 서우.
홍대연씨 가족들의 산행, 홍씨의 아이들 서정(앞)과 서우.
이동연씨가 시각 장애 어르신들의 눈이 되어 가을 산행을 나섰다.
이동연씨가 시각 장애 어르신들의 눈이 되어 가을 산행을 나섰다.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원고 분량은 제한 없습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체육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박혜균(포항시 북구 용흥동)

다음 주 글감은 '10월의 마지막날엔…'입니다

♥아버지의 유산 가을 산행

(사진:서정(앞), 서우(뒤)와 가을산행을 하며)

30년 전, 나는 아버지 때문에 해야 하는 산행이 싫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나를 아버지는 학교에서 조퇴시켜서 내당동 반고개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데리고 가셨다. 거기에서 하루에 한 번 운행한다는 푸른색 시골 완행버스를 탔다. 성주 용암 어느 골짜기에 차가 섰다. 버스에서 내린 아버지는 바지를 동동 걷어올리시고는 나를 업고 허벅지까지 오르는 깊은 개울물을 아슬아슬하게 건너셨다. 그때 흐르는 물길을 보다가 멀미가 나기도 했었다. 다 건넌 후에는 금방 뱀이라도 나올 것 같은 풀숲을 헤치며 걸어야 했다. 그러고는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 길도 수 십분 간 걸어야 했고 발만 보고 걷다가 길 쪽으로 돌출된 가시나무에 얼굴이 할퀴기도 했다. 앞에 가시던 아버지 때문에 튕겨진 나무 가지에 얼굴을 맞기도 했다. 보이지도 않는 산짐승을 후쳐 낸다고 가끔씩 '훠이~'고함치시는 아버지 목소리가 어린 나에게는 짜증스럽게 들렸다. 그렇게 온 길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제 겨우 산 밑에 다다랐을 뿐이었다. 1시간만 더 올라가면 된다고 말씀하시며 '조심해라', 그 말 한마디뿐이었다. 능선을 바꾸기 위해 좁은 계곡을 건너뛸 때, 아버지도 몰랐던 흙 함정에 종아리까지 빠져 버렸다. 울지도 못하고 밀려드는 어린 마음의 원망은 지금 생각하면 큰 서글픔이었던 것 같다. 가파른 길을 오를 때 낙엽 때문에 미끄러졌고 주저앉으면서 돌부리에 손이 부딪혔다. '아부지가 너무 싫어!' 그렇게 간 산길 끝에는 이제 아버지 묘가 있다. 할아버지 산소와 함께. 아버지는 아버지가 7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셨다. 7살 이후의 할아버지를 느끼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본능이 숨어있는 그날 내 나이 7살 때의 가을산행이었다.

아버지는 3년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나에게는 가을 산행을 유산으로 남기시며….

내 첫 아이가 7살이다. 서우는 산행을 너무 잘한다. 30년 전 아버지가 같이 가는 듯하다. 낙엽 미끄러운 줄도 알고 요즘 아이들은 너무 똑똑하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산행을 오르며 내 아이 서우와 서정이가 이야기를 나눈다.

"할아버지는 천국에 있나요. 여기 산에 있나요?"(7살 서우)

"여기는 (천국 가는) 정거장이야"(5살 서정)

홍대연(대구 서구 평리2동)

♥시각장애 어르신들의 눈이 되어

(사진)

며칠 전 시각 장애를 안고 살아가시는 어르신들과 함께 가을 산행을 갔다. 2인1조로 어르신 눈이 되어 오른 산은 행여나 실수로 발목이라도 다칠까 염려되어 손을 꼭 잡고 정상까지 갔다. 산에 오르는 동안 시력을 잃게 된 사연을 들었다. 그래도 나와 함께 오른 어르신은 후천성이라 숲 속 풍경을 설명하는 나의 말을 듣고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쯤 도토리 떨어지고 단풍이 물들 철이라고 볼 수 없어도 느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정상에 도착한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펴고 둘러앉았다. 도시락을 앞에 두고 더듬거리며 젓가락으로 땅바닥에 뒹구는 나뭇잎을 집어 올린다. 상처가 될까 얼른 빼내고 도시락을 들이밀었다. 감각으로 집어든 김밥을 입으로 가져갈 때는 참 행복해 보였다. 보이지 않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누구한테도 의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부족함 많은 나에게 깨우침을 주었다.

울긋불긋한 가을 산하보다 더 값진 하루였다. 볼 수 없어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어르신들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기에 또 누군가를 위해 써야 한다면서 지갑 문을 열었다. 불행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이동연(대구 북구 복현2동)

♥창녕 화왕산에서 추억 만들기

가을이 다가오면 울긋불긋 단풍이나 억새밭과 갈대밭의 은빛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이는 모습을 보는 게 산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 친구들과 창녕 화왕산으로 산행을 하기로 했다.

화왕산 입구는 장터처럼 시끌벅적했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초행길이라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 올라갔다. 생각보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서로의 힘이 되어 잡아주고 기다려주며 거의 2시간가량 걸려 정상에 도착하였다.

"야~하!" 4명의 친구들과 동시에 고함을 질렀다. 처음 보는 그 풍경은 정말 아름다운 우리나라 가을의 산이었다.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기 셔터를 연방 눌러댔다. 우리 키보다 더 큰 억새풀 사이로 걸으며 가을의 푸른 하늘을 만끽하고 내려왔다.

요즘도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더 추워지기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인 가을을 느껴보면 좋을 듯하다.

강민정(대구 남구 봉덕3동)

♥그 길을 걸으면 당신이 떠올라

곱게 물든 단풍잎과 주위에 있는 나무들이 어우러진 것을 바라보면서 양 옆으로 억새밭을 지나며 긴 시간을 산속에서 걸어본다는 것이 얼마 만인가?

초행 산행이다 보니 걷다가 너무나 힘이 들어 앉아서 쉬다가 가고 싶건만 일행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된다는 압박감으로 걸음을 재촉하다가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서서히 혼자 처졌다. 주위의 아름다움에 생각은 이미 과거로 향해가고 있었다.

어찌 이렇게 좋은 산행 길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들 아빠와 함께할 수 없는 걸까? 나의 마음이 가슴 깊은 데서 아픔이 서서히 묻어져 나온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시골에서 대구 집으로 오는 길에 산길을 따라 차를 몰고 오다가 오늘처럼 억새가 많은 곳에 차를 세우고 당신은 산 위에 올라가서 억새를 한 아름 꺾어서 나의 가슴에 안겨주었지요. 그땐 젊은 시절이었기에 남편의 사랑을 고마운 줄 모르고 당연하다는 듯이 받았지요.

오늘에서야 호젓한 길을 걸으며 당신 생각을 하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은데 당신은 이미 없네요. 당신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이 이미 대학생이 다 되었네요. 여러 가지로 참 힘들었어요. 오늘은 당신이 정말 보고 싶네요. 눈물이 흐르네요. 그렇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냥 흘릴래요.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커서 우리 둘이만 오붓하게 산행을 많이 할 수 있을 텐데…. 당신이 없는 빈 자리는 나를 때때로 순간순간 많이 슬프게 해요.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계절 탓인지, 요즘은 더더욱 생각나네요. 내가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 하는 것 재미있어 했고 즐거워했잖아요. "왜 먼저 갔나요?" 행복한 삶을 오랫동안 살다가 함께 떠나고 싶었는데….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당신을 꼭 만나서 못 다한 이야기 다할게요. 가을 산행을 마치며….

슬기 엄마(대구 남구 봉덕3동)

♥해인사 가는 길 잊혀지지 않는 풍경

아이들 초등학교 다닐 때 합천 해인사로 가을 산행을 간 적 있었어요. 성주 사는 남편 친구네와 같이 가기로 해서 합천에서 만나 지리를 잘 아는 남편 친구가 앞에 가고 우리는 뒤따라가는데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자가용을 타고 가서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해인사 가는 길은 굽이가 많고 험했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단풍과 억새풀이 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야산 길가에는 할머니들이 사과, 감, 산약초 등 좌판이 벌어져 심심찮았고요. 아이들 손잡고 먹을거리도 사먹고 해인사 팔만 대장경도 보고 온 가족이 가족 사진도 찍고 내려왔습니다. 그때는 다리도 아프고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추억이 되었네요. 벌써 많은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고 보니 가족이 함께 나들이 가는 일도 잘 없고 그때 그 시절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아이들 어릴 때 자주 놀러 다니지 못한 게 아쉽고 가을 산행하니까 그때 일이 제일 많이 생각나네요.

두 집이 해인사 다녀오면서 식당에 들러 맛있는 밥도 사먹고 참 좋았던 것 갔습니다. 올가을이 가기 전에 가족이 추억에 남는 가을산행 가고 싶네요.

함종순(김천시 개령면 동부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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