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너머 그 어딘가에 파랑새들은 날고, 무지개 너머로 새들은 날아가고. 그럼 왜, 나는 그럴 수 없는 걸까.'
무척이나 귀에 익은,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1939년)라는 영화의 주제곡이기도 한 '무지개 너머'(Over The Rainbow)라는 노래 중의 한 대목이다.
위암판정을 받고 1년여의 투병생활 끝에 얼마 전에 무지개 너머로 훌쩍 떠나버린 어느 여배우를 추모하는 동호회 모임에서 보았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만 하여도 까마득한데, 그 너머는 또 얼마나 아득한 거리일까?
'오버 더 레인보우'(2002년)는 그냥 예쁘고, 마냥 해피엔딩이 준비된 영화다. 내일 날씨를 미리 챙겨주는 기상 캐스트인 남자 주인공과 어저께 잃어버린 물건들을 되찾아 챙겨주는 유실물센터 직원인 여자 주인공이 만나서, 오늘의 무지갯빛 사랑을 피워간다. 빤히 보이는 길을 따라서 뻔하게 마무리되는, 한바탕 파스텔톤의 신파극이다. 그냥 모처럼 편안하게 행복한 그녀의 낯빛과 몸짓을 느긋하게 따라가다가, 마지막 장면에 문득 눈길이 머무른다. 햇살이 화사하게 깨어지는 창가, 작은 물잔에 내걸린 무지개가 어른거린다.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때로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까지 찾아 헤매던 옛 사랑의 파랑새가 그곳에서 한가롭게 아롱거리고 있었다. 눈길조차 닿을 수 없는 저 무지개 너머가 아니라 손 내밀면 금방이라도 잡힐, 바로 내 곁에 말이다. 엉뚱한 곳에서 애먼 짓만 하다가 이제야 찾아왔냐며, 나무라는 듯 반겨주는 듯, 뜻 모를 미소만 머금고서.
무지개 너머의 아득하게 닿을 수 없는 곳, 잃어버렸던 사랑도 되찾아주고, 이룰 수 없던 사랑도 어김없이 맺어줄 것만 같은 곳을 일러 유토피아(utopia)라고 한다. 이는 그리스어의 '아니다'(ou)와 '장소'(topos)를 합쳐서 만든 단어로, '아무 데도 없는'(no-where)이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 박자만 늦추어서 다시 읽어보면, 금세 '지금, 여기에'(now-here)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제란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곧 지나갈 오늘일 뿐이다. 머리 꼭대기 위로 무지개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고개 숙여서 발끝에 무진장으로 깔려 있는 보물들을 알뜰히 챙겨 보자는 게다. 장생불사를 꿈꾸며 동해바다 너머 삼신산으로 불사약을 구하러 동남(童男) 동녀(童女) 500명을 보내고서는, 안절부절 제 명도 다 못 채우고 나라만 절단을 낸 진시황이 어리석었다고 흉볼 일이 아니다. 파랑새는 벌써부터 지금, 여기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데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지갯빛에 달뜬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송광익<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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