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세종시 이 지역에 암초가 되다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가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앞으로 4단계로 일을 진행하면서 최종 대안을 도출한다는 게 민관합동위 목표다. 최종 대안이 어떻게 나올지는 합동위 활동이 끝나 봐야 알겠지만 이 정부가 지향하는 세종시의 밑그림은 이미 나와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가 세종시를 경제 허브'과학 메카로 만들겠다고 밝힌 것이다. 행정 중심 도시가 아닌 기업 중심 도시로 만들겠다는 말이다.

대구경북은 세종시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결코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기업 중심 도시를 지향하는 세종시가 대구경북에 득(得)보다 실(失)이 된다는 사실이다.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다른 아이가 가진 떡을 빼앗아 우는 아이에게 주는 경우와 세종시 문제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지향하는 세종시 발전 방안 중 하나가 바이오 도시다. 이를 위해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고려대, KAIST와 벌써 양해각서를 맺었다. 그 골자는 세종시에 고려대가 바이오메디컬 단지를, KAIST가 바이오 및 메디컬, 에너지 등 신개척 분야 연구와 벤처 육성 단지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다. 미국의 한 녹색투자 전문기업은 세종시에 의료과학시티를 조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세계 10대 병원그룹인 파크웨이와 미국 보스턴대학이 세종시에 투자하거나 대학, 병원을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세종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바이오 도시가 되는 것이다.

대구 신서에 의료단지를 조성하고, 수성의료지구 개발에 올인하는 대구경북은 바이오 도시 세종시와 필연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세종시를 전폭적으로 뒷받침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대구경북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신서 의료단지는 빈 껍데기로 전락해 대구경북이 염원하는 의료단지 조성을 통한 지역 도약의 꿈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바이오 도시인 세종시를 필두로 의료단지를 조성하는 충북 오송, 그리고 대전이 연계하는 의료 벨트가 구축된다면 대구경북으로서는 의료단지를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이 유치에 공을 들이는 국책사업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마저 세종시로 갈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이 사업은 세종시를 염두에 두고 추진되는 만큼 아예 법에다 입지(立地)를 세종시로 명시하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세종시로 가면 대구경북으로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지역 발전을 도모하려는 대구경북은 사업 추진에 엄청난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틱한' 조건을 내걸고 정부가 열을 올리는 세종시에 대한 국내외 대기업 유치도 대구경북으로서는 우려할 일이다.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토지를 공급하고 엄청난 세제 혜택까지 주는 방식으로 정부가 직접 대기업 유치에 나선다면 대구경북은 기업 유치는 고사하고 있는 기업도 지키기 어렵다. 대구테크노폴리스, 대구국가산업단지, 경제자유구역 등 기업들을 유치해야 할 땅이 허허벌판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엔 세종시와 수도권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정부나 일부 정치인들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다른 지방들도 엄연히 같이 살고 있다. 세종시의 자족 기능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모든 국책 사업을 저인망식으로 훑어 모아 세종시로 몰아주는 것은 옳지 않다. 형평에 맞지 않는 과도한 인센티브를 내세워 정부가 나서 세종시로 기업을 유치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게임의 룰을 어기는 것이고 백년대계인 국가 균형발전을 가로막는 일이다. 손에 쥔 떡을 뺏기고서 가만히 있을 아이는 없다는 사실을 이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수십 년 만에 떡다운 떡을 손에 쥐었다 빼앗긴다면 그 아이는 독기를 품을 수밖에 없다.

김천으로 오려던 롯데그룹 맥주공장과 지역에 바이오 관련 공장을 설립하려던 글로벌 기업이 세종시로 방향을 트는 등 벌써 세종시로 인한 그림자가 대구경북에 드리워지고 있다. 대구경북은 세종시 문제가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세종시가 대구경북 발전을 가로막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세종시 대안으로 인해 대구경북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만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제대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李大現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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