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이란 말이 넘쳐난다. 대통령은 서민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고 돌보는 게 소명이라고 하고 정부도 이른바 친서민 정책을 쏟아낸다. 모든 정책의 기조에 서민이 중심이 된 양상이다. 서민을 명쾌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돈에 국한하면 빈곤에 시달리는 평균치 이하는 분명한데 어찌 보면 딱히 내세울 것 없는 평균치 사람을 지칭하는 듯도 하다. 중산층이란 애매한 말처럼 사람마다 느끼는 서민은 차이가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의 정의가 두루뭉술한 만큼 이른바 친서민 정책은 쉽게 체감되지 않는다. 도대체 나아진 게 없다고 불평들이 적잖다. 호주머니에 직접 현금을 넣어주면 모를까 아무리 좋은 정책도 금방 느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왠지 공허하게 들린다. 대통령이나 정부의 살뜰한 마음 씀씀이에도 나라 경제나 개인 살림살이란 금방 나아지는 게 아니다. 직장인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구복지루(口腹之累)를 뽑았다. 먹고살 걱정이란 뜻이다. 직장을 잃고 배회하는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빠듯한 살림살이의 샐러리맨으로서는 절절한 말이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른 것이다.
서민을 강조함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잘살고 못살고의 차이가 클수록 사회는 갈등이 생긴다. 강자보다 약자를 배려함은 강자의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쉽게 다가오지 않는 말은 자칫 오해와 반발을 부른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 말처럼 말은 풍성한데 도대체 잡히는 게 뭐냐는 불만이 돌아온다. 넘쳐나는 서민 타령은 서민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진정성의 강조가 되레 진정성을 의심받게 할 수도 있다. 남발되는 서민, 친서민이 불만과 패배감을 안겨 준다면 희망과는 반대 결과다.
세종시 논란으로 서울과 지방이 다시 화두로 떠오른다. 성장을 강조하는 측은 수도권의 강점을 살려 나가되 지방은 지방대로 특성을 살려 갈 때 나라 전체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본다. 수도권 규제는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방 사람들에게 서울과 지방은 극과 극이다. 돈과 사람과 자원과 교육 모든 것이 서울로 집중돼 서울은 총체적 집중화로 시달리고 일터와 삶의 현장이 황폐화된 지방은 총체적 위기 상황으로 몰렸다고 본다.
돌고 도는 인생살이와 마찬가지로 정치도 돌고 돈다. 최선의 정책, 최선의 선택이 위기의 부메랑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게 정치 현장의 모습이다. 정책 실현은 찬성하고 추진한 사람보다 반대한 사람 덕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반대가 반대를 낳고 역풍이 뜻밖의 과실을 맺기도 한다. 당시로선 최선의 정책이 나중에는 최악의 결정이란 오명을 얻기도 한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열렬한 지지를 불러온 적도 있고 날벼락의 봉변이 입지를 우뚝 세워준 사례도 있다. 궁지에 몰리던 이탈리아 총리도 날벼락을 당한 뒤 동정 여론이 많아졌다는 뉴스도 나온다.
지방분권은 노무현 정부의 화두였다. 그러나 씨만 뿌렸을 뿐 꽃도 열매도 보지 못했다. 대신 지금 정부여당은 광의로 보면 서울 기능의 분산을 반대한 편이었다. 그런데 작금의 세종시 논란을 보노라면 노무현의 화두에 MB가 불을 지피고 있는 모습이다. 상대의 화두를 저도 모르게 들고 있는 양상이다.
세종시 수정안이 현실로 다가온다. 수정안 관철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반대하다간 또 어떤 역풍을 맞을지 알 수 없다. 수정안이 나오고 다시 본격적인 논쟁이 붙는다면 지방분권이 화두가 될 소지는 일단 커졌다. 자칫하다가는 전 정부의 함정에 현 정부가 빠져, 풀려고 할수록 더 얽히고설킬지도 모른다는 느낌마저 든다.
서민이나 지방은 모두 약자다. 약자의 변신은 한두 마디 말로 가능한 게 아니다. 공기업 한둘이 옮겨오고 공장 몇몇이 들어선다고 지방의 살길이 열린다면 지금 지방의 아우성은 엄살일 뿐이며 잔돈 몇 푼으로 서민에게 희망을 준다고 여긴다면 이 또한 단견이다. 극과 극의 연결은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변신을 위한 약자의 노력도 중요하다. 새로움의 열매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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