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 기대감과 두려움을 함께 느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수술이라면 두려움이 먼저 앞설 것이다. 더욱이 갑작스런 외상 때문이 아니고 천천히 진행된 병 때문에 환자가 수술을 앞두고 있다면 기다리는 동안의 두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유난히도 수술실에서 불안해하던 환자가 기억 난다. ○○씨는 수술에 필요한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손저림증을 완화하기 위한 수술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마취를 하고 나오던 마취과 담당의사가 큰소리로 "선생님, 심장이 매우 불안하게 뛰니 수술을 빨리 끝내 주세요"라고 말한다.
필자가 집도하는 손 수술은 전신 마취보다는 부분적으로 팔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술하는 중에도 환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수술실로 들어가 ○○씨에게 물었다.
"○○씨, 많이 불안하세요? 무슨 일이 있어서 수술도 하기 전에 이렇게 심장이 널 뛰듯 하네요"
"수술실에 올라오기 전에 링거를 단다고 혈관을 찾는데 세 번이나 바늘을 찔렀어요. 그때부터 여기저기 아프고 너무 불안해요"라는 대답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수술을 준비하면서 더 커진 듯했다. 필자가 전에 근무했던 종합병원에서는 수술실로 향하는 환자들 모두에게 MP3를 준비해서 음악을 듣도록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님, 좋아하는 노래나 듣고 싶은 노래 있어요."
"어쩌죠 교회에 다녀서 찬송가밖에 모르는데……."
필자는 간호사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CCM 찬양곡을 틀어달라고 주문하고 수술실 문을 닫아 음악이 더 잘 들릴 수 있도록 하였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씨는 노래를 들으며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널을 뛰던 심장 박동이 차츰 안정되었다. 덕분에 서두르지 않고 수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수술실이라는 낯선 환경과 여러 가지 장비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이 주는 차가움은 환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환자들을 대하고 수술을 하다보면 사소한 부분까지 환자를 배려하는 일이 참으로 쉽지 않다는 걸 체험한다. 더구나 항상 반복되는 일상에서 의사들은 환자의 심리적인 부분은 간과해버리기 십상이다. ○○씨 수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의사와 환자 입장에서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했던가. 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의사로서 지식과 기술을 다해 치료와 수술를 한 후 환자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은 것이 있다. 환자는 의사의 치료를 믿고 따라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환자가 많이 불안하지 않으면서 더 좋은 치료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수술을 마친 후에는 늘 환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런 내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다음날 치료를 위해 진료실에 들어선 ○○씨가 나에게 더 큰 선물을 주신다.
"선생님은 의사 냄새 나지 않는 의사 선생님이시네요. 고맙습니다."
환자의 마음을 얻었으니, 앞으로 ○○씨의 치료가 더 잘 될 듯하다.
이 영 근 053)550-5000 trueyk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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