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미국 현지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공연 준비를 9월부터 시작한다. 뭐 그렇게 유난을 떠느냐고 할 만도 하지만 미국의 국교가 기독교이고, 또 교회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클레멘타인은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하고 현재 음악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는 만큼 높은 완성도를 원했다.
연습 첫 날, 열명 남짓한 출석자들을 보고, 사람이 너무 적어 실망했다. '그냥 작은 교회의 가족 행사인가'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연습에 임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나와 친구들에게 항상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매주 화요일, 주기적인 연습이 계속되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늘어나서 열명 남짓한 인원이 어느덧 50명가량이 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 매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번 크리스마스 공연이 두 개의 교회가 연합해서 하는 것이고, 그 연합이 바로 내가 출석하는 교회인 장로회와 이곳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제7안식일 교회라는 것이다. 이 소식을 처음 접한 나와 룸메이트들은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다문화 사회라지만, 이런 부분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의 종교는 매우 배타적이다.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같은 성경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는 많은 교회의 교파 사이가 오히려 타종교보다 배타성이 짙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장로교와 제7안식일교는 한국이라면 절대 연합될 수 없는 구성이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거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두 교파의 외형상 가장 큰 차이는 제7안식일교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장로교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다는 점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 차이점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토요일에는 제7안식일 교회에서 공연을, 일요일에는 장로교회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나의 흰머리 친구 Bill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빌은 나의 염려와 걱정을 한마디로 일축시켰다. "신념이 같고 목적이 같은데, 방법이 무슨 큰 상관인가? 언제 예배를 드리면 어떤가? 우리는 결국 같은 하나님과 성경을 믿는 것 아닌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의견이 오갈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큰 가르침으로 와닿았다.
기나긴 연습 끝에 우리의 공연날짜가 19, 20일 2회로 잡혔다. 토요일은 제7안식일교회에서, 일요일은 우리교회에서.
마침내 공연날이 다가왔다. 하얀 머리 Bill이 우리를 제7안식일 교회까지 태워다 주었다.
복장은 검은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 그리고 붉은색 나비넥타이였다. 답답한 정장도 그리 즐겨입는 편은 아니지만 특히나 나비넥타이는 처음이라 무척이나 어색했다.
Bill이 나비넥타이 어디서 샀냐고 묻는다. 나는 "이거 중국에서 가져온 거예요" 라고 하자 매우 놀란다. 난 단지 'made in china'를 돌려 말했을 뿐인데, 농담이 과했나?
각자에게 공연에서 쓸 양초가 지급되고 드디어 무대에 올라섰다. 생각보다 교회에 사람이 많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준비한 노래를 하나 둘 전하고 아이들의 노래와 연주, 그리고 우리의 지휘자 클레멘타인의 환상적인 피아노 독주와 그의 동생과의 바이올린 협주가 계속되었다. 마지막 곡이 끝나는 순간까지 화요일마다 회사 마치고 바로 연습하러 달려갔던 힘들었던 날들에 대한 기억과 우리의 노래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청중들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가슴이 벅차올랐다.
칸타타가 끝나고 교회에서 준비한 식사를 함께 나누며, 사람들의 염려섞인 소리를 들었다. 바로 오늘부터 'Snow storm'이 온다는 것이었다. 심하면 일요일 칸타타가 취소될 수 도 있다는 설명이다. 눈이 와봤자 얼마나 오겠냐는 생각에 크게 염려하지 않았지만, 토요일 오후부터 펑펑 쏟아져 내리는 눈을 보면서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날 밤, 눈은 이미 정강이 높이까지 쌓였고, 내일 아침까지는 그치지 않는다는 예보에 행여나 행사가 취소될까 걱정되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침, 교회에서 연락이 왔다. 칸타타뿐만 아니라 예배자체가 취소되었다는 비보였다.
나와 룸메이트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3개월간 연습하여 남의 교회에서 공연 한 번하고 정작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공연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다니! 뉴욕의 눈은 이처럼 대단한 위력을 가졌다.
분한 마음에 왜 하필 이번 주에 이런 눈이 왔는지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세상을 새하얗게 물들인 아름다운 눈을 보며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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