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는 묘한 매력을 지닌 곳이다. 그저 예쁘다는 형용사적 감성뿐 아니라 아득한 추억마저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책장 속 책 한권을 무심코 꺼내들었을 때 옛날 사진 몇장이 후두둑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생전 다시 읽을 것 같지 않던 그 책을 꺼내든 것도 묘한 인연이요, 하필이면 사진첩도 아닌 그곳에 언제 찍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사진 몇 장이 꽂혀 있다는 것도 기가 찰 노릇이다. 추억의 더듬이를 작동시키는 것은 비단 사진뿐이 아니다. 이유도 모른 채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 색깔이, 코끝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향기나 연기가, 보들보들한 아기 속살 같은 새봄의 파란 싹들이 문득 시간을 멈춘 채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만든다. 청도엔 첫사랑을 간직한 채 갈 일이 아니다. 잊었다 생각하고 그곳에 발을 디뎠다가 밀려드는 추억과 회한에 몸서리칠지도 모른다.
청도의 사계는 색의 향연, 특히 보색의 잔치이다. 봄에 찾은 청도는 복사꽃의 분홍빛과 감잎의 연둣빛이 연출하는 색채 대비 속에 어지럼증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여름은 부서지는 햇살에 눈이 시릴 지경이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한창 농익은 복숭아의 노랗고 붉은 기운이 자외선 필터처럼 시원함을 선사할 테니. 가을은 그야말로 절정이다. 연둣빛 가냘픈 몸 끝에 하늘하늘 매달린 흰색과 분홍색, 보라색 코스모스는 색 잔치의 서막에 불과하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깔려있는 진녹색 양탄자와 그 위에 어느 한곳 치우침 없이 고루 뿌려진 선홍빛 점들. 익어가는 감나무 뒤로 펼쳐진 초록의 산하와 그 위에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듯한 하늘까지. 그곳이 바로 청도다.
겨울 청도는 설핏 잠이 든 듯하다. 나머지 계절 동안 지독스레 뽐냈던 색채가 한풀 꺾인 듯 붉고 푸른 기운은 적막 속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폭풍전야 같은 긴장감이 남아있다. 아니 움트고 있다. 나머지 계절의 추억이 너무 강했던 탓일까. 청도의 회색과 갈색 속에 꿈틀거리는 무지개 색 난장이 금세라도 튀어오를 것 같다. 긴장과 설렘 속에 청도를 찾았고, 섣부른 실망감은 자취를 잃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청도나들목에서 내려 운문면 쪽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마치 소설책 줄거리만 읽는 듯한 찜찜함이 남는다. 다소 시간이 걸릴지언정 헐티재(가창댐 길)나 팔조령 길을 택한 것도 이런 이유다. 눈 때문에 길이 막히지 않는다면 팔조령 터널 대신 옛길로 굽이 돌아가는 것도 좋다. 고개를 내려오면 눈에 가득 햇살로 가득한 벌판이 펼쳐진다. 청도 읍내를 거쳐 20번 국도를 따라가면 운문에 닿을 수 있다. 가다 보면 매전면 동산리에 있는 수령 약 200년의 '처진 소나무'도 만날 수 있다. 쭉쭉 뻗은 금강송도 좋지만 아무래도 소나무는 굽고 틀어진 것이 제격이다. 게다가 그리 무거울 것도 없는 가지가 하늘을 우러르지 않고 땅으로 향하는 모습은 자못 경건함마저 들게 한다. 운문사 경내에도 '처진 소나무'가 있다. 매전면 소나무와는 사뭇 다른 맛이다. 500년 된 이 운문사 '처진 소나무'는 우산을 펼쳐놓은 듯 둥그렇게 내려앉았다. 임진왜란(1592년) 당시 이미 다 자란 나무가 됐다고 하는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매년 여름철이면 막걸리 수십말을 밑거름으로 부어준다고 한다. 겨울 산의 백미는 역시 소나무다. 그리고 지금 찾는 그곳엔 소나무가 지천이다.
매년 80만명이 찾는다는 청도 운문사. 예전 같으면 매표소부터 솔숲 옆길을 차로 달려 주차장까지 5분도 채 안 걸렸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렇게 내달리는 것은 무지한 짓이다. 매표소에서 솔숲을 지나 운문천을 따라 절까지 예쁜 길을 내놓았다. 길 안내를 맡은 청도군청 문화관광과 임형수씨는 "얼마 전 예산 7억원을 들여 마사토와 목재 데크로 꾸민 산책길을 만들었다"고 했다. 앞으로 5억원을 더 들여 매표소 왼쪽에 '불교 테마정원'도 조성할 계획이다. 길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가 가장 좋다. 게다가 사람 편하자고 콘크리트, 아스팔트를 깔고 나면 그 맛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무릎이며 발목에 무리가 오게 마련이다. 다행히 운문사 솔숲길은 가급적 인공적인 내음이 덜 난다. 자연스런 흙길에다 행여 사람들이 바로 옆 운문천으로 뛰어들세라 나무틀만 짜 두었을 뿐이다.
수백년 나이를 고스란히 간직한 솔숲은 그대로가 휴식처다. 잰걸음이면 10분 남짓 안 걸리겠지만 쉬엄쉬엄 나무와 대화를 나누어본다. 수북하게 내려앉은 마른 솔잎은 지난 세월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겨울 솔숲, 오가는 이 많지 않은 이 길에서 잠시 환영을 본다. 서기 557년(신라 진흥왕 18년)에 한 신승(神僧)이 동·서·남·북과 중앙에 다섯 갑사를 지었는데 현재 남은 것은 서쪽 대비갑사(현 대비사)와 남쪽 천문갑사(현 운문사)뿐이다. 4년 뒤 원광 국사가 중창했고, 그는 일생의 좌우명을 묻고자 찾아온 화랑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를 내려준다. '운문'(雲門)은 그로부터 343년이 지난 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도왔던 보양 국사에게 보답하며 내린 이름이다. 그때와는 나무와 물, 길도 달라져 있을 터. 하지만 고송(古松)이 휘감는 신묘한 분위기 속에 1천400년 넘게 이 길을 오르내렸던 옛 사람의 발길을 더듬게 된다. 신라가 낙동강 서남 일대에 세력을 확장할 당시 병참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고, 화랑수련장도 있었던 곳. 바로 이곳에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탄생 설화가 남아있다니, 세상 일은 알 수 없다. 하기야 뭔들 제대로 알 것인가.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은 운문사 경내를 빠져나와 다시 암자들로 발걸음을 옮긴다. 원래 남쪽으로 길을 잡아 사리암 쪽으로 오를 계획이었으나 이곳은 등산객의 발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이다. 일대가 운문사 땅이다 보니 신도증이 없이는 사리암이 있는 계곡 쪽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2011년 말까지 생태보전을 위해 내려진 조치란다. '출입금지'가 그때 풀릴지도 알 수 없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왔던 길을 잠시 되짚어 가다 보면 '북대암'으로 오르는 길이 보인다. 운문사 경내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면 산 중턱에 내려앉은 암자 하나가 보이는데 바로 북대암이다. 가파르지만 좌우로 꺾어진 모양이 제법 걸을 만한 멋을 풍긴다. 그런데 아쉽다. 하기야 요즘 절길이 다 그렇지만 콘크리트 포장으로 옛 맛을 잃어버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씩 옮기는데 차들이 연이어 오른다. 저 가파른 길에 주차장까지 있는 모양이다. 중턱쯤에 계곡을 건너는 다리 하나를 만났다. 새로 지어진 듯 반들반들한 돌다리다. '극락교'라는 이름 오른편에 이렇게 적혀있다. '나를 비우면 모두가 편안하리라.' 세상이 바뀌어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비우는 시간도 빠른 모양이다. 한 걸음씩 허위허위 올라가도 비울까 말까인데 차를 타고 휭 올라가면서 어떻게 자신을 비울 수 있을는지.
운문산에 최초(서기 557년)로 세워진 암자인 북대암. 이곳에 오르면 운문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용한 산사의 맛은 사라졌지만 풍광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다. 뒤편에 보이는 바위투성이 정상부가 바로 지룡산성이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계기를 만든 곳. 산성을 쌓았던 후백제 왕 견훤이 신라 수도 금성을 공략하자 신라는 고려에 항복하고, 그 뒤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게 됐다. 지룡산성에 전해오는 전설도 재미있다. 인근 마을 총각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한 처녀가 있었는데, 어느 날 밤중에 낯선 총각이 그 처녀를 찾아왔더란다. 준수한 용모에 반한 처녀는 매일 자정이 지나면 찾아온 그 총각과 운우지정을 나누었고, 급기야 아기를 갖게 됐다. 석달만 기다려달라는 총각의 간곡한 청에도 불구, 아이의 아버지를 대라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긴 처녀는 어느 날 밤 그 총각의 발목에 명주실을 묶어두었는데, 이튿날 날이 밝은 뒤 그 실을 따라가 보니 깊은 동굴 속에 낮잠을 자는 거대한 지렁이가 나오더라는 것. 노루 가죽을 씌워 지렁이를 죽이자 그 뒤로 총각은 나타나지 않았다. 처녀가 낳은 아이는 다름 아닌 후백제 왕 견훤. 훗날 신라를 정복하기 위해 지렁이의 영지인 지룡산을 찾아가 산성을 쌓았지만, 이후 민심을 잃고 결국 아들 신검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등창으로 죽고 만다.
역사는 길을 따라 흐른다. 다시 길을 내려와 청신암, 내원암으로 향한다. 운문사 일대가 소나무 길이라면, 내원암 길은 전나무가 가득하다. 비록 포장길이기는 하지만 찾는 이가 드문 겨울철에는 걷는 재미가 가장 쏠쏠한 곳이다. 내원암은 약사전 약수가 유명하고, 청신암은 칠성기도를 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북극전(칠성각)이 있는 곳이다. 내원암 뒤쪽으로는 소나무가 없다. 그래서 겨울이면 더욱 황량한 느낌을 준다. 암자 입구에 여전히 푸릇푸릇한 대숲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비록 새로 지은 건물 탓에 소박한 옛 맛은 사라졌지만 따사로운 햇살 덕분인지 푸근함이 감도는 예쁜 절이다. 지친 다리를 쉬며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돌아선다. 운문사 주차장에서 시작해 그다지 먼 길을 다니지 않은 것 같은데도 오늘 내달은 길이 3, 4시간은 족히 걸린다. 운문의 겨울은 호젓함이 있어 더욱 정겹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청도군청 문화관광과 임형수 054)370-2063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갤러리(12월 둘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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