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돕는 실천, 함께 나누는 삶.'
배움의 울타리 학교에서 무엇보다 앞서 가르치는 말이지만 정작 학생들은 이 말의 의미를 되새겨볼 겨를이 없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갖기 힘들다. 이런 가운데 남을 위한 삶을 실천하며 자신의 진로까지 만들어가는 학생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입시를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한 겉치레가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하며 삶을 밝혀가는 진정한 '봉사 마니아'들이다. 자원봉사를 통해 인생의 진로를 찾은 두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기훈(심인고 3)
"자원봉사는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강기훈군에게 자원봉사는 가끔 펼쳐지는 이벤트가 아니다.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생활의 한 부분이다. 2007년 고교에 입학하면서 시작한 자원봉사활동이 진로까지 결정하게 될지는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다.
"몸이 불편한 장애우를 처음 봤을 때 무표정한 모습에 말조차 걸기 힘들었어요. 그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무섭기도 했고,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중증 장애우들을 봤을 때는 안쓰럽기만 했어요."
장애인시설 애망원에서 강군은 식사와 목욕을 돕고 청소를 했다. 만남의 횟수가 늘면서 어색하던 사이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무언가를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떨치는 게 중요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닌 친구로서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복지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주말마다 시간을 냈고, 차비만 있으면 복지관을 찾았다. 고교 3년 동안 만남의 시간만 796시간. 인증서를 받지 않은 시간까지 합치면 1천 시간을 넘는다.
2학년 때는 봉사동아리 '손짓사랑'을 이끌면서 봉사의 참뜻을 다른 학생들과 함께 실천하는 시간도 가졌다. 부모님은 스스로 봉사활동에 열심인 아들을 내심 기특해하면서도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소홀할까 걱정하는 빛이 역력했다. 공부할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하는 아들을 말리며 대학 가서 해도 충분하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강군은 봉사활동을 통해 얻은 것이 더 많다고 했다. 자신과 조금 다른 이웃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꿈을 키워줬고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갖게 했다. 2008년 대구자원봉사대축전 동아리부문 대상, 2009년 개인부문 대상을 받은 강군은 수시모집을 통해 대구대 초등특수교육과에 합격한 것도 봉사활동 경험 덕분이라고 믿는다. 자신의 작은 힘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뿌듯함, 그들이 주는 감동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귀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삶에서 무엇보다 큰 자산이 됐다.
"몸이 불편하다고 남에게 의지하고, 도움만 바라진 않아요. 오히려 뭐든 스스로 하려고 해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죠. 잘 안 되는 것을 약간 도와주는 게 봉사자들의 역할입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 그들의 입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을 바라보게 됐다. 자원봉사 인증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복지관을 찾는 학생들을 볼 때면 자원봉사의 뜻부터 가르쳐주고 싶었다. 형, 누나와 이야기하며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장난감만 던져주고 자기들끼리 모여 시간을 때우는 학생들을 보면 속이 상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욕이나 비속어를 아이들이 따라할 때는 화가 나기도 했다.
강군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 "얼굴이 늘 굳어 있던 아이가 저만 보면 환하게 웃으며 혼자 힘으로 기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이처럼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이 있는가 싶어요. 내가 약간 힘들고 불편해도 남과 나누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습니다."
◆김보경(달고벌고 3)
"편견을 버리면 마음으로 통해요."
김보경양은 중학교 1학년 때 자원봉사를 하는 어머니를 따라나선 것을 시작으로 봉사에 빠져들었다. 그 후 6년 동안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은 봉사활동이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이 혼자 자라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아이로 클까봐 부모님께서 봉사활동을 권했어요. 많은 복지시설을 방문하며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일을 해야 하며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도 확실히 할 수 있었어요."
김양이 처음 한 일은 복지관에서 점심 도시락을 싸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배달해주는 일이었다. "늘 어머니가 해 주는 밥만 먹던 제게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기다리는 내 또래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어요. 그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어요."
날이 갈수록 봉사의 즐거움이 커졌다. 중3 때는 가족봉사단을 만들어 홀로 사는 어르신을 정기적으로 찾아 말벗이 되어주고 집안 청소며 세탁, 목욕, 산책을 함께했다.
김양은 사랑을 나누는 데 나이나 여건은 문제될 게 없다며 자유재활원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큰 어른들이 '언니'라고 부르며 손을 잡고 반가워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맨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두번째 방문 때도 먼저 다가가질 못했어요. 그런데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리자 한결 편해졌습니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저보다 더 순수하고 정이 많았어요. 봉사는 제 스스로를 반성하고 돌아볼 시간을 줬어요."
고2 때 평소 가기 힘든 '밥퍼공동체'를 다녀온 뒤 더욱 적극적인 봉사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됐다. 아침부터 야채를 씻고 다듬어 준비한 700인분의 무료 점심급식. 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준비한 식사가 떨어져 주린 배를 잡고 돌아서는 사람들을 볼 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한다.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겠다며 사는 것보다 남을 도우면서 사는 것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자원봉사를 통해 알게 됐어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어요."
6년간의 봉사활동은 기쁨과 보람을 줬고 앞으로의 길을 밝혀줬다. "적성과 진로를 찾지 못하던 저에게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줬어요. 특수학교 교사가 돼 장애아동을 가르치며 살고 싶어요."
김양은 올봄 영동대 초등특수교육과에 입학해 꿈을 현실로 이루는 첫발을 내딛는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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