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이명박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도지사 오찬 간담회는 세종시를 둘러싼 각 자치단체의 복잡한 셈법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명박 대통령의 표현대로 "반은 정치인, 반은 공직자"인 만큼 '세종시 블랙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강력히 전하는 한편 반대급부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치열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세종시 수정 문제와 관련, "뜻밖에 너무 정치논리로 가는 게 안타깝다"며 "이 문제는 정치적 현안이 아니고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하나의 정책적인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나라당에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야당 내에서도 다를 수 있다"며 "그게 무슨 소속에 따라서 그냥 완전히 의견이 뭉쳐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특정한 계파나 집단을 향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론"이라고 해명했다.
이 대통령은 아울러 "내 정치 이익은 없지만 차기 대통령이 일하는 데 지장을 주는 일을 하면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까 생각했다"며 "개인적으로 욕 먹고 정치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더라도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대통령된 사람의 옳은 길이라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2시간가량 이어진 모임에는 박준영 전남지사를 제외한 15명의 전국 시도지사(지사가 공석인 충남은 부지사)들이 모두 참석했으며 시도지사들은 세종시 수정안이 자신들의 지역 사업과 겹친다는 점을 주로 호소했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세종시에 다 가져가는 게 아닌가 하고 주민들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며 "국가산단, 첨단복합단지와 관련해 확실한 무언가를 보여주면 안심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세종시로 집중되고 있는데 기초과학분야는 세종시에서 하더라도 산업친화적인 것은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현장에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두 단체장은 영남권 신공항의 신속한 착수도 요청했다.
또 박광태 광주시장은 "광산업을 특화한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LG가 세종시에 투자를 한다고 해 우려가 많다"고 했고, 김완주 전북지사는 "세종시 자체보다 새만금과 혁신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새만금산단 분양 가격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세종시 인근인 충청권 단체장들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정우택 충북지사는 "정부에서 자족도시 형성을 위해서 대단히 노력한 흔적은 보인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도 "충북은 제조업 중 80.5%가 신성장동력 산업에 집중돼 있는데 세종시와 겹친다. 불가피한 경쟁을 겪고 오히려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고 민심을 전했다. 또 박성효 대전시장은 "대전은 행정수도가 거론되면서 기업도시든 혁신도시든 모든 데서 배제되었다는 비판적 시각이 있다"며 "인근지역에 대한 발전, 연계가 먼저 설정됐다면 여론을 수렴하는데 유리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종시가 들어서는 충남도 이인화 행정부지사는 "세종시 발표 후 여러 대기업을 유치해 달라는 등의 내용을 발표했는데 정치적 시각으로 보시는 분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지역 세일즈에 적극적인 단체장도 많았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충청 이외 지역은 많이 걱정하고 있다"면서도 "강서지역 물류단지를 국가산단으로 지정해 혁신도시와 같은 수준의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김태호 경남지사는 "경남과 부산, 전남이 공동으로 해온 남해안프로젝트가 특별법도 제정됐고 종합발전안이 정부에 올라가 있으므로 빨리 좀 되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김 지사는 또 "마·창·진 통합 시 이름이 걱정인데 대통령께서 좋은 이름을 작명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해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김태환 제주도지사 역시 "부가가치세 문제와 영리병원도입 문제를 의결해줘 전 도민이 대단히 고마워하고 있다"며 "해군기지 건립 문제도 있는데 대통령께서 한번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이전이 백지화된 탓인지 수도권 단체장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차분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도 재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며 "중국 북경권, 상해권, 홍콩권 발전 양상을 보면 우리도 서울·경기·인천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뜨거운 맛을 보여 주겠다"며 결기를 드러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수도 분할이라는 망국적 포퓰리즘을 막아주신 것에 대해 국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큰 결단을 하셨다고 생각하고, 또 감사드린다"고 평가한 뒤 미군부대 이전, 지방분권 강화 등을 건의했다.
이 같은 건의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걱정하는 것처럼 세종시 때문에 다른 지역이 지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미 갈 곳이 정해져 있는 곳은 세종시에 들어갈 수 없고, 다른 기업을 더 유치할 땅도 없다"고 말했다. 또 "시도지사들이 너무 수세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미래 경쟁력 강화를 준비하는 정부가 불필요하게 사업을 중복시키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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