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삶의 정답

▲백옥경
▲백옥경

구미에 오래 살아도 서울이 고향인지라 마음은 항상 그곳에 가 있었다. 그러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서울 가는 일이 뜨악해지게 되었다. 언젠가부터는 같은 어투를 쓰는 사람들의 말이 색다르게 느껴지고 빠르게 변하는 서울의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얼마 전 과학축전에 가보기 위해 서울에 잠시 들렀다. 차 안에서 한 엄마가 코흘리개 아이에게 백과사전류의 책을 당당하게 읽어주고 있었다. 아니 지식을 주입한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았다. 차 타는 시간도 아까운 그녀의 절박함이 공공장소에서의 부끄러움을 앞서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광경이 자연스러운 일인 듯 묵묵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행사장에는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와 있었다. 엄마들은 부스 앞에 일사불란하게 줄을 섰다. 설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귀엽기만 한 중고생들에게까지 엄마들은 예의발랐다.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인사시켰다. 복잡한 장소에서 조금만 몸을 스쳐도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엄마들, "땡큐"와 "익스큐즈 미"를 입에 달고 살지만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인 미국 사회를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닌지.

해외과학 부스에서 직접 동시통역을 하여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는 엄마, 전문가 뺨치는 수준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엄마도 일부 보였다. 경쟁이라는 전장에서 아이들을 진두지휘할 그네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의 입장에서 무리를 해서라도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자극이 되는 환경을 선택하고 육아에 전념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는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차는 어느새 구미역에 도착했다. 나는 계단을 오르려다 무심코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줌마 줄 서세요."

열명 남짓한 사람들 틈에서 뒤에 서있던 서울 말씨의 젊은 엄마가 날을 세우고 소리쳤다.

'구미 온 지 얼마 안 되나?'

좀 풀어져도 될 것 같은 마음이 아직은 이른 것 같았다.

앞산 정상엔 하늘을 향해 삐죽삐죽 솟아 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하늘 끝까지 닿아보려는 고독한 몸짓들. 에베레스트 산에 선들 다를까? 사람들은 산을 바라볼 때 정상에 있는 나무들만을 본다. 산 중턱에 열어 놓은 등산로, 그곳을 지키는 나무들도 있다. 그곳은 사람을 맞이하는 풍요로운 자리이다. 그곳에는 웃음과 넉넉함, 그리고 낭만이 있다.

감자 삶아놓았으니 먹으러 오란다. 갓 지은 밥 있으니 먹으러 오란다. 서울에 사는 한 그런 말은 절대 못 들어 볼 것 같다. 삶의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경북도립구미도서관 느티나무독서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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