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긴 나무의자/ 이하석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바람과 비에 바랜 채

햇빛 속 하얗게

기다리고 있는 긴 의자

거기 앉아서 남자가 여자의 어깨를 밀어 쓰러뜨리면

여자의 머리는 의자 밖으로 빠지고

의자의 다리 하나가 문득 삐걱댄다

사랑이 가볍지 않고 한쪽으로 너무 기운 탓이다

숲이 끊임없이 사운대고

깊이 알 수 없는 늪의 개구리들은 요란히 운다

어딜 향하든 길들이 급하지 않다

사랑이 아니라도 아무나 의자에 앉으면

숲 아래 잠든 물빛에 숨죽일 것이다

그의 다리와 의자의 다리는 튼튼해서 외롭고

때로 무너져 다시 고쳐 놓으면 의자는

제 깡 한동안 유지하려 애쓴다

숲으로 들어가는 길과 숲에서 나오는 길목에

의자는 성실하게 앉아 있다

때로 달빛이 물컵 엎지를 것처럼 쏟아져내려도

의자는 기다리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버티며

늘 지난 일처럼 앉아 있다

------------

주체의 정서를 최대한 제거해버리고, 객체/대상에 직핍하는 언어로 사물에 내재하는 미묘한 '아우라'를 드러내 보이는 데 탁월한 시적 성취를 보여 온 이하석 시인이다. '긴 나무의자' 역시 그러한 면모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의자란 게 그러하다. 바람과 비에 바랜 채/햇빛 속 하얗게/기다리고 있는 '것들'이다. 의자도 현실의 실체인 한 '존재의 부대낌'에서 예외일 수 없을 터. '사랑'에 부대껴서 다리 하나가 문득 삐걱대거나 기울기도 한다. 때론 다리가 너무 튼튼해서 외롭기도 하다.

의자는 그렇다. 때로 무너졌다가도 제 깡 한동안 유지하려 애쓰고, 무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으며, 어쩔 수 없이 버티며 늘 지난 일처럼 무심히 앉아 있다. 당신은 어떠한가?

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공익신고자의 신원을 공개하고 비방한 것에 대해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며 ...
대구시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1천억원 규모의 대구로페이 발급과 5천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금융지원을 포함한 민생경제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며, ...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변호사 업무를 재개한다고 발표하며, 별도의 사무실 없이 주거지를 사무소로 등록하고 상담 업무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