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행]경북을 걷다-<6>영양-대티골 숲길을 거닐다

恨 서린 길 어디가고…이토록 '진경산수화' 만들어 냈을까

대티골로 들어가면 오붓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만난다. 사박사박 눈 위를 걷는 즐거움이란.
대티골로 들어가면 오붓하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만난다. 사박사박 눈 위를 걷는 즐거움이란.
중금속으로 오염돼 버려진 땅이던 이곳이 자생화공원으로 거듭났다.
중금속으로 오염돼 버려진 땅이던 이곳이 자생화공원으로 거듭났다.
대티골 권용인씨 집에 있는 황토방에서 내다본 풍경. 마치 액자 속 사진처럼 보인다.
대티골 권용인씨 집에 있는 황토방에서 내다본 풍경. 마치 액자 속 사진처럼 보인다.
영양군청 김상수씨가 보내준 여름 대티골 계곡 모습. 이런 이끼폭포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영양군청 김상수씨가 보내준 여름 대티골 계곡 모습. 이런 이끼폭포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겨울 하늘이 유리알처럼 말갛다. 눈 부신 햇살 속에 무채색 산줄기마저 듬성듬성 초록빛을 발한다. 산이며 들마다 온통 하얗게 내려앉은 잔설만 아니라면 계절을 잊을 법 하다. 하지만 착각도 잠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바깥 날씨는 극과 극이다. 낮기온마저 온도계 영점 밑으로 한참 떨어진 그런 차디찬 날에 영양을 찾았다. 잠시 차에서 내려선 길, 발끝이 따끔거리고 장갑을 낀 손끝은 시리다 못해 감각을 잃을 지경이다. 하필이면 이런 날을 잡았을까. 원망할 대상도 없이 혼자서 주절거려본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왜 영양이라고 불렀을까' 궁금해졌다. 지명의 유래는 천년 전인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 이유는 전해지지 않는다. 옛 문헌에 따르면, 고려시대 이전 '고은'(古隱)이었다가 후대에 영양으로 고쳐졌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만 해도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였던 이 곳은 이름 그대로 '예로부터 숨겨진 곳', 즉 고은이었으리라. 하지만 통일 이후 이 곳은 신라 문물이 전파되는 중간 교통지였고, 새로운 석탑 건축기술인 '모전석탑'이 전해지고 수많은 사찰이 들어서는 등 문화적 중흥기를 맞게 된다. 이때부터 숨겨진 곳에서 밝음이 피어나는 곳, 즉 '영양'(英陽)으로 바뀌게 됐으리라 짐작케 한다. 햇빛 부서지는 맑은 겨울 날, 영양을 찾은 것이 우연은 아닌 듯 싶다.

영양군청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봉화쪽으로 향한다. 길을 따라 좌우를 오가며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가 바로 반변천이다. 영양 이야기를 하면서 물줄기로는 반변천, 산줄기로는 일월산을 빼놓을 수 없다. 일월산에서 발원한 반변천은 영양을 남북으로 종단한 뒤 청송을 지나 임하댐에서 낙동강과 만나는 물줄기다. 길이는 109.4km. 지금 찾아가는 곳은 반변천의 발원지인 윗대티다. 대티골에 얽힌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뤄두자. 북쪽으로 달리는 길 좌우로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이 거대한 석상처럼 버티고 서 있다. 절벽 퇴적층을 따라 나란히 쌓인 눈 덕분에 신비감을 자아낸다. 제 아무리 잘 그린 진경산수화인들 여기에 비하랴. 길 옆 곳곳에 인적이 끊긴 집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한때 누군가의 따스한 쉼터였고, 저녁 무렵 모락모락 연기가 피워올랐을 그곳에는 싸늘한 냉기만 가득하다.

일월산은 한(限)이 많이 서린 곳이다. 전라도 지리산, 충청도 계룡산과 더불어 영산(靈山)으로 불리는 곳. 해마다 수많은 무당들이 기를 받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일월산에 얽힌 전설은 잠시 뒤 정상 부근에 남아있는 '황씨 부인당'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일월산 줄기를 타고 봉화 춘양면으로 넘어가는 옛 국도는 '수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한 맺힌 길이다. 지금은 '일월산자생화공원'으로 바뀐 이 곳은 한때 일월산에서 캐낸 금, 은, 동, 아연을 골라내고 제련하던 곳이었다. 1939년부터 일제의 수탈이 시작됐고 해방 후에도 광산 운영은 계속되다가 1976년 채산성 악화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금속 제련과정에서 사용한 비소와 청화소다 등 독성 물질은 땅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흙에서는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었고, 오염된 물이 흘러든 하천에는 물고기 한 마리 숨 쉴 수 없었다. 그렇게 방치된 세월이 30년. 2001년이 돼서야 오염원을 완전히 차단했고, 2004년 일월산 자생화가 피어나는 공원으로 꾸밀 수 있었다. 지금도 공원 안쪽 산자락에는 콘크리트 흔적이 화석이 된 거대한 짐승마냥 버티고 서 있다. 근처에 있는 폐광산도 마찬가지다. 시커멓게 아가리를 벌린 동굴 안쪽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카드뮴으로 오염된 이 물은 마실 수도 없다. 인간이 남긴 생채기는 아물지언정 없어지지 않는다. 봄이면 온갖 야생화들로 울긋불긋 잔치를 열겠지만 지금은 하얀 눈으로 덮혀있다. 상처를 보듬어 주는 흰 붕대마냥.

공원을 지나 잠시만 올라가면 왼편으로 목적지인 '자연치유 생태마을 대티골'을 알리는 커다란 녹색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 위로 '토속신앙 본거지 총본산', '일월산 황씨 부인당'을 알리는 표지판도 있다. 길을 따라 접어들며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100m 갈 때마다 세월이 10년씩 뒤로 흐르는 듯 하다. 초록빛이 창연할 때 이 곳을 찾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흰 눈에 덮혀 조용히 잠을 자는 듯한 분위기도 결코 아쉽게 여겨지지 않는다. 대티골 숲길은 지난해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어울림 상'(숲길 부문)을 받았다. 영양을 소개하는 안내 책자에도 빠져있을 만큼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곳이다.

대티골은 그저 숲만 있는 곳이 아니다. 경상북도의 '부자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 선정돼 '자연치유 생태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도시 시장에서는 살 수도, 맛 볼 수도 없는 진귀한 산나물을 자연 그대로 재배해 특성화했다. 6년 전 귀농한 뒤 마을 주민과 더불어 살며 대티골 탈바꿈의 주역을 맡고 있는 권용인(51)씨. 기자와 이야기하는 내내 그는 '우리 집' 대신 '우리 마을'이라고 말했고, '내가' 대신 '마을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10여가구 마을 주민들과 산마늘을 비롯한 야생 그대로의 나물을 키우며 산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마늘은 바로 산마늘입니다. 잎을 뜯어먹는 마늘이지요. 쪽마늘은 신라시대에 들어왔습니다." 친환경 음식도 한창 개발 중이다. 비료 한 알, 농약 한 방울 안 들어간 무공해 채소를 자연에서 그대로 채취해 만든 밥상. 마을 주민 어느 집에서 밥을 먹더라도 똑같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조리법도 함께 나누고 있다. 밥 한끼에 2만5천원부터. 비싸다. 하지만 비싸지 않다. 갑자기 들이닥쳐 밥을 달라고 해도 줄 수 없다. 한겨울이라도 햇볕 드는 곳에서 낙엽 아래 숨 쉬는 나물을 캐서 찬거리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그 정성과 노력이라니. 산나물 샐러드를 만드는 재료도 직접 효소를 발효시켜 만들었다. 꽁지머리를 묶고 수염을 기른 산 사나이 권씨는 "영양군청 산림과에 미리 전화만 하면 직접 숲 해설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마을에는 손님들이 묵어갈 수 있는 황토방도 마련해 두었다.

대티골 숲길 탐방로는 마을 입구 옛 국도에서 시작한다. 바로 옆에 봉화로 향하는 아스팔트 도로가 있지만 지금 내딛는 길은 수탈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바로 그 길이다. 새 길이 나면서 용도폐기된 국도가 한두 곳이랴마는 이 곳이 새삼스러운 이유는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흙길이라는데 있다. 수십 굽이를 돌고돌아 일월산 자락을 아우른 뒤 봉화로 넘어간다. 일월산이 어디 동네 뒷산인가. 해발 1천219m로 경북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새 국도도 영양터널, 봉화터널을 지나서야 산을 지날 수 있다. 옛 국도는 말이 국도이지 지금의 임도보다 못하다. 폭도 좁은데다 굽이도 심하다. 하지만 걷기에는 넉넉하다. 평지에 가깝게 경사도 적다보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는 이 길만큼 안성맞춤도 없다. 하얗게 눈이 쌓여 흙조차 보이지 않는 이 길에 바퀴자국이 남아있다. 누가 이 험한 길을 차로 내달았을까? 길 안내를 맡은 영양군청 공보계 김상수씨는 "아마도 밀렵꾼들이 발자국을 찾기 쉬운 눈길을 노려 이미 다녀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일월산에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수달과 2급인 담비, 삵을 비롯해 너구리, 족제비, 노루, 고라니, 멧토끼가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 국도 주변은 온통 금강송으로 빼곡하다. 송이밭이기도 하다. 지난해만 해도 송이 때문에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등 갈등을 빚었지만 올해부터는 누구나 사시사철 찾을 수 있다. 다만 송이철에 솔밭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옛 국도를 따라 한참을 오르다가 왼쪽으로 꺾어 잠시 길을 내려서면 대티골에서 가장 윗쪽에 사는 이을옥 할머니 집을 만나고, 그 곳에서 다시 왼쪽으로 접어들면 반변천 발원지를 지나 대티골 숲길로 통해 마을로 내려올 수 있다. 지금은 하얀 눈길 속에 파란 하늘이 보이지만 신록이 우거질 때면 나뭇잎이 하늘을 가려버린다. 대티골은 한자로 대치(大峙), 즉 큰고개 골이다. 윗대티와 아랫대티에 대나무가 많아 대티라고 불렸다는 설도 있지만 한자 이름이나 지형을 볼 때 큰고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아쉬움을 남긴 채 대티골을 떠나 새 국도로 접어든다.

영양터널을 지나자마자 왼편을 보면 '일월산 중계소'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차를 타고 오른다. 일지봉과 월지봉이 있는 일월산에는 방송 중계소와 군부대가 있다. 정상까지 차를 타고 오를 수 있다. 정상 부근에는 '황씨 부인당'이 있다. 황씨 부인에 얽힌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딸만 9명을 낳은 황씨 부인이 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왔고, 뒤늦게 심마니의 삼막에서 아내를 찾은 남편이 손을 덥석 잡으니 아내는 사라지고 백골과 재만 남았다는 전설이 있다. 또 결혼 첫날 밤 오해 때문에 아내를 남겨두고 도망친 남편을 기다리다가 초야의 모습 그대로 시체가 돼 풀더미 속에 묻혔다는 황씨 부인의 전설도 있다. 전설을 뒤로 한 채 다시 산을 오른다. 일지봉과 월지봉에서 내려다보는 눈 덮인 산줄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굳이 색을 입힐 이유가 없다. 저 멀리 동쪽 구름 아래 동해가 보인다고 한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그 곳이 동해라고 한다. 그 장관은 귓볼이 얼어붙는 추위조차 잊게 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도움말=영양군청 공보계 김상수 054)680-6061 / 대티골 권용인씨 054)683-6832

전시장소 협찬=대백프라자갤러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