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雲門서 華岳까지](22)억산의 남부 별채

사자바위·門바위·고깔 닮은 갈모봉…화려한 암봉 즐비

억산 남부 별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팔항덤. 등산객들은 이걸 사자바위라 부르지만 굳이 모양으로 따지자면 말머리에 더 가까워 보인다. 숲 위로 맨 서편부터 주둥이, 까만 눈, 귀 등의 모습이 뚜렷하다.
억산 남부 별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팔항덤. 등산객들은 이걸 사자바위라 부르지만 굳이 모양으로 따지자면 말머리에 더 가까워 보인다. 숲 위로 맨 서편부터 주둥이, 까만 눈, 귀 등의 모습이 뚜렷하다.

지난번까지 11회에 걸쳐 살펴 온 가지산~운문산~호거산 구간 이후 운문분맥에 처음 솟는 산은 '억산'이다. 이 산은 흔히들 '깨진바위'와 동일체로 연상한다. 북편 청도 쪽에서 볼 때 억산엔 그것 외에 달리 뚜렷한 지형이 없으니 무리가 아니다. 산줄기는 억산 이후 특출한 봉우리 하나 없이 그냥저냥 흘러갈 뿐인 것이다.

그러나 남쪽에서 보면 사정이 반대다. 밀양 산내면에서는 억산이야말로 화려하기 짝이 없고, 씩씩함 또한 운문산'가지산에 못잖아 보인다. 깨진바위 외에도 대단한 암봉들이 숱하다는 뜻이다.

북쪽과 남쪽에서 보는 억산이 왜 이리 다를까? 산세가 억산 최고봉 동서로 발달하지 않고 남쪽에 매우 큰 별채를 일으켜 세운 결과다. 그것에 가려 깨진바위는 밀양서 바라보이지조차 않을 정도다. 억산을 제대로 알려면 이 사실부터 직시하는 게 좋다.

억산 남부 별채는 정상부서 가녀린 맥을 타고 나간다. 그리곤 급작스레 풍선처럼 부풀어 동'서 간 4㎞, 남'북 간 3㎞에 가까운 덩치로 커진다. 거기다 동편에선 '운문서릉'이 팔을 내밀어 호거산까지 한데 감싸 묶어버린다. 동'서 간 7.2㎞에 걸치는 더 큰 공간이 하나 형성되는 것이다. 동시에 서편에서는 구만산 능선이 억산 별채를 호위한다. 결국 운문산~호거산~억산~구만산 구간이 한 덩어리로 어우러져 거대한 별천지를 형성하는 양상이다.

뿐만 아니라 그 별천지는 하얀 벼랑바위들로 치장해 화려하기도 짝이 없다. 눈에 띄는 것이 모두 암괴절벽이고 치렁치렁 늘어뜨린 '치마바위'다. 밀양 쪽서 보는 억산은 이렇게 화려하다. 깨진바위 정도로 국한되는 청도서 보는 억산과 전혀 다르다.

억산 최고점서 출발해 이 남쪽 산덩이를 답사하자면, 출발 2분여 만에 헬기장을 거치고 도합 10분 만에 926m봉에 닿는다. '억산-1'이라는 구조팻말이 서 있는 그곳에선 산줄기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석골사 쪽으로 바로 내려서는 '억산남릉', 다른 하나는 서쪽 매우 큰 산덩이로 발달해 가는 더 굵은 지릉이다.

만약 926m봉서 억산남릉을 바로 걸어 내린다면 10분쯤 뒤 854m봉 위에 서게 된다. 석골사 아래 석골마을서 올려다볼 때 정북으로 가장 부각되는 그 암봉이다. 워낙 뚜렷해 처음 올려다보는 이들 중엔 깨진바위인 줄 여기는 경우까지 있다.

854m 암봉에서도 산줄기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정말 석골사 법당을 향해 곧장 내려서는 것, 다른 건 더 동편으로 굽어 가는 능선이다. 주 등산로는 동편능선 위로 나 있고, 다시 10분 뒤 도달하는 656m봉 직전의 재에서 서편 골짜기 안으로 꺾어 내려가게 돼 있다. 그 골을 마을에선 '북암골'이라 했다. 북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 능선 대신 926m봉에서 서쪽 능선을 택해 걷는다면 한참 동안 평평한 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남쪽으로 매우 큰 골이 펼쳐지면서 시야가 확 트인다. 석골사 서편의 '새암골'이다. '새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 노정에서는 얼마 후 896m봉을 만나나 등산로는 그걸 피해 돌면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30여 분 뒤 삼거리에 이르니, 거기는 산줄기 흐름과 직각 되게 북서쪽으로 벗어 나가는 지릉 갈림점이다.

그 지릉 위에 매우 뚜렷한 924m 애암(崖岩'절벽암괴)이 솟았다. 운문분맥을 걷다 보면 가장 선명히 두드러지는 봉우리다. 돌아져 있어 밀양 쪽에선 보이지 않지만, 억산 별채 중 유일하게 분맥 너머 청도 임실마을서 넘어다 보이는 지형이다.

그 암봉에는 '사자봉 927.6m'라 표시돼 있고, 등산지도들은 흔히 '사자바위'라 소개한다. 하지만 국가기본도 상의 높이는 분명 924m이고, 남쪽 인곡마을(밀양 산내면 가인리) 어르신들은 그걸 '팔항덤'이라 불렀다. 온 세상, 즉 팔황(八荒)이 다 보인다고 해서 '팔황덤'이라 했던 것인지 모른다. 그 위에 올라서면 운문분맥 상의 인재와, 그 남쪽 '소매골' 골짜기, 소매골 높은 자리에 터 잡은 기도원, 재 북쪽 청도 땅 등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팔항덤 연결점으로 되돌아와 다시 본래 가던 방향으로 걸으면 금방 910m봉에 오른다. 거기서는 산줄기가 남동쪽-남서쪽 두 방향으로 또 갈리는 바, 남동쪽 것은 지금까지 봐 온 새암골을 마감하는 지릉이다.

이 지릉 아랫부분에 석골사 절의 서편을 호위하는 765m봉이 솟았으며, 그걸 서편 운곡(雲谷)마을선 '갈모봉'이라 불렀다. 비 올 때 갓 위에 덮어 쓰던 기름종이 고깔 우비인 갈모를 닮았다는 뜻이다. 그 봉우리서는 동편으로 짧은 능선이 이어져 나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져 내리니, 그 남쪽 석골마을서는 이걸 '수리덤'이라 지칭했다. 765m봉 전체는 갈모봉, 그보다 몇십m 낮은 동쪽 벼랑바위는 수리덤인 셈이다. 그런데도 갈모봉 정상에다 울산 어느 산악회서 '수리봉'이라 쓴 정상석을 세워 놨으니 난감할 뿐이다.

갈모봉 능선 들머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석골사 정문과 마주 보는 지점이다. 거기서 갈모봉~910m봉~억산정상을 거쳐 아까 살핀 926m봉과 854m 암봉 능선길을 도는 '새암골 환종주로'가 잘 나 있다.

910m봉에서 동남쪽 대신 서남쪽으로 걸으면 10분 내에 882m봉에 도달된다. 운곡마을 뒷능선 정점이다. 이 882m봉을 운곡마을 어르신은 분명하게 '농바위'라 지목했다. 장롱을 닮은 바위봉우리라는 뜻이다. 그 아래 골 이름도 '농바위골'이라 했다. 하지만 현장에는 '문바위 884m, 밀양마음산악회 2004. 12. 5'라는 표석이 서 있다. 높이도 틀렸고 이름도 틀린 셈이다.

이 이야기를 그 아래 마을들에서 했더니 듣는 어르신들마다 혀를 찼다. 문바위는 문설주같이 사람이 드나드는 통로 양쪽에 섰거나 사람 다닐 만큼만 틈이 나 있는 큰 바위덩어리를 가리키는데, 그게 어떻게 그런 모양이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석골마을 어르신은 운문서릉에 진짜 문바위가 있다며 가리켜 보였다. 또 인곡마을 어르신은 북바위 아래, 인재로 이어가는 인곡(봉의)저수지 물가 길목에 문바위가 섰다고 했다. 일대에 문바위가 둘 있긴 하나, 이 농바위만은 문바위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농바위봉을 지나 30여분 걸으면 '북바위봉'에 도달한다. 높이 806m. 그 이름의 유래가 된 '북바위'는 그 산덩이 정상부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해발 710m의 애암(절벽암괴)이다. 인곡마을서 볼 때 무엇보다 선명히 두드러지는 지형으로, 온 세상이 다 물에 잠겼던 옛날 홍수시대에 이 일대만 북만큼 남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산내면지'는 북바위를 한역(漢譯)하면서 '북 고(鼓)' 자를 써 '고암'(鼓岩)이라고 표기해 뒀다. 북바위봉은 '고암봉'이 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 현장에는 진작에 '北岩山'이란 표석이 서 버렸다. 증언해 줄 어르신들이 계실 때 세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산내면 소재지 쪽에서 접근할 경우 먼저 이 북바위봉이 엄청스런 산덩이로 솟아 보인 후 농바위봉이 나타나고, 마지막에 갈모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앞에서 봤듯, 이렇게 펼쳐진 '억산 별채'는 이 일대에 한 덩어리로 묶여 있는 보다 큰 산세의 반쪽에 불과하다. 별채는 억산 서편으로만 펼쳐진 것이고, 동편으로 또한 그만한 산세가 이어져 있다는 말이다. 억산~호거산~운문산 사이 운문분맥 본맥에서 뻗어 내리는 지릉들이 연출하는 풍광이 그것이다.

이 나머지 절반을 보기 위해 석골사를 출발해 물길을 따라 오르자면, 먼저 절 동편의 북암골 입구를 거치고 억산재로 오르는 대비골 출구를 지난 뒤 딱밭재 아래의 딱밭골 출구를 지난다. 그렇게 세 골이 갈라져 간 뒤 마지막 남은 골은 '상운암골'이란 이름으로 운문산 정상부까지 이어 간다.

그 중 대비골을 북암골로부터 구분해 주는 능선은 앞서 본 926m봉서 내려서는 억산남릉이다. 대비골과 딱밭골을 구분하는 경계능선은 호거산 962m봉서 출발해 내리는 '호거남릉'이다. 딱밭골과 상운암골을 구분 짓는 능선은 딱밭재 바로 동편 운문분맥 봉우리서 뻗어 내리는 '927m봉 서릉'이다.

마지막 상운암골 들머리의 상징물은 '927m봉 서릉' 끝 골 바닥에서 떨어져 내리는 '선녀폭포'다. 그 폭포 남쪽 운문서릉 기슭에는 '전구지바위'라는 암괴가 섰으며, 거기서 운문서릉 쪽으로 거슬러 오르면 '얼음굴'에 이른다. 허준의 스승이 자신의 몸을 해부해 실습하라고 했다는 전설이 이어져 오는 특별한 지형이다.

이런 명소들을 품은 골 가름산줄기들은 어느 것 없이 화려한 애암들로 치장했다. 그곳 마을과 절에 '石骨'(석골)이란 이름까지 붙었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테다. 겨울 금강산이 온통 바위만 두드러진다고 해서 '皆骨山'(개골산)이라 불린다지만, 이곳은 여름철까지도 '석골'인 것이다. 산에서 흙은 '肉'(육), 바위는 '骨'(골)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 여러 모습의 절반가량은 산 밖에서 볼 수 없다. 운문산 정상서 뻗어 내리는 3㎞ 정도의 '운문서릉'이 그 앞을 빗장 지르기 때문이다. 오르는 데 2시간 정도 걸리는 이 산줄기는 대신 그 자체로 상당한 풍광을 연출해 보인다. 엄청난 규모의 암괴에 출입문 한 개만큼의 긴 홈이 파여 길을 열어 주듯 하는 '문바위'가 대표적이다. 석골사 주차장서 90여 분 거리에 있다.

이런 절경들을 두루 돌아보고도 본래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억산 남부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등산 명소가 될 수밖에 없다. 그 환종주의 중심이 석골사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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