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체험은 인생의 위기 극복에 분명 도움이 된다. 위기를 잘 넘기면 기회는 오기 마련이다.'
'내 인생의 위기 극복'을 주제로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한 사람이 70, 80년을 살아간다고 할 때 어찌 크고 작은 고비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 없으랴. 문제는 이를 극복하는 마음자세. 비교해 보면 현대인들은 불과 20, 30년 전보다 위기 극복 측면에서 훨씬 나약해진 것으로 보인다.
물질(돈)에 기댄 삶을 살다 보니 물질이 없어지면 쉽게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적잖이 벌어진다. 정신적인 나약함도 심각할 정도로 추정된다. 하루에 35명이 자살해 세계에서 독보적인 자살률 1위 국가가 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살이 계속 늘어난다고 하니 더 문제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찾아오는 인생의 위기 혹은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똑 부러진 정답이 있을 리는 없다. 다만 긍정적 마인드로 자신이 처한 상황에 최선을 다해 슬기롭게 대처하면 적절한 방법이 나오고, 시간이 흐른 뒤 "그땐 참 힘들었지" 하고 돌이켜볼 수 있는 날이 온다는 점은 분명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얘기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우리와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삶의 파고를 넘어가는지 한번 살펴보자.
◆극한 체험이 인생살이에 도움이 된 2인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에서 죽을 뻔했는데 뭐가 두렵겠습니까. 매사 부딪히다 보면 해결되고,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임하면 풀어내지 못할 갈등도 없습니다."
대구등산학교 장병호(49) 교장과 대한적십자사 홍경용(54) 구호봉사과장이 인생의 위기극복에 대해 공통적으로 한 말이다. 두 사람은 각각 히말라야 14좌 봉우리 중 하나인 K2와 안나푸르나를 오르다 죽을 뻔한 경험을 갖고 있다. 살아가면서 그보다 더한 상황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대범하게 풀어내고, 정면으로 부딪쳐 문제를 해결한다.
장 교장은 1986년 8월 3일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K2 등반 시절 공격조로 선발돼 마지막 캠프에서 정상을 공격하기 전날 설사를 해 탈수현상까지 일어난 상황에서 기어이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하지만 K2에서 제일 위험한 구간인 'SERAC'을 내려오면서 힘이 빠져서 경사 80도의 빙벽에 매달려 11시간을 버텨야 했다. 그는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잘한 일, 못한 일, 후회되는 일 등 수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고 회상했다. 이때의 경험은 웬만한 일상사에는 흔들리거나 당황하지 않는 배포를 줬으며, 주변 지인들에게 삶의 위기 극복 방법을 조언할 때도 한번씩 들려주는 레퍼토리가 됐다.
홍 과장은 안나푸르나봉을 정복하지 못한 것이 한이 돼 두 딸의 이름을 안나와 푸르나로 지었다. 첫째 딸이 홍안나, 둘째딸은 홍푸르나다. 그는 1983년 8월 안나푸르나 정복을 위해 히말라야로 떠났다. 7,900m 마지막 캠프에서 정상 정복에 나섰으나 기상상태가 너무 나빠 결국 하산했는데 이마저 여의치 않아 눈밭에서 길을 잃고 영원히 산사람이 될 뻔했다.
그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하루하루의 삶에 감사하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인생은 도전 자체가 아름답고, 위기도 극복하는 데 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곧 기회, 약점을 장점으로'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앙대 의대 본과 3학년에 재학하다 휴학하고 현재 남구청 공익요원으로 근무 중인 조창희(28)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왜소한 체격에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반 친구들에게 맞기도 하고, 돈까지 빼앗기는 등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조씨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기로 결심한 것. 거울 앞에서 혼자 웃기는 이야기를 하는 등 성격을 바꾸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한 끝에 외향적인 사람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성격 변화는 삶에 많은 기회를 줬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뒤에도 과감하게 삼수까지 해 기어이 바라던 의대에 입학한 것. 조씨는 "또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난관이 닥쳐올지 모르지만 거울을 보면서 밝은 성격으로 바꾸던 그때를 기억하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계명대 홍보팀 박창모(37)씨는 용기 있는 선택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극복한 케이스. 박씨는 전문대 사진과 졸업을 앞둔 1996년 자신의 졸업작품전을 준비하며 중대한 기획을 하게 된다. 사진기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경기도 가평에 있는 꽃동네를 찾아간 것. 당시 꽃동네를 책임지고 있던 신부는 한달간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선행조건을 내걸었다. 그 한달 동안 박씨는 인생에 있어 소중한 경험을 했다.
배변 기능이 떨어져 변비로 고생하는 할아버지의 항문을 손으로 팠던 일은 평생 남을 기억이 됐다. 덕분에 똥독이 올라 3일간 고생했다. 똥독이 오르면 고열과 함께 몸살기가 생긴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봉사기간을 다 채우고 나서 사진을 찍고 대구로 내려왔다.
또 하나의 시도로 대구의 사창가인 자갈마당 풍경도 찍었다. 사창가 풍경을 찍어보겠다는 다소 엉뚱한 발상, 주위의 이상한 눈길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한달 내내 자갈마당을 드나드는 성실함으로 원하는 장면들을 담을 수 있었다.
2000년에는 박씨의 인생에서 가장 큰 상심을 느꼈던 일이 찾아왔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회사에서 2년간 일한 그를 어느 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해고시킨 것.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온갖 궂은일을 다했던 터라 배신감이 컸다. 낙심해서 반지하 고시방에 틀어박혀 있던 어느 날, 따사로운 햇살 아래 동네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문득 바라본 창밖 풍경에 남산 타워가 보였다. "꽃동네에서도, 자갈마당에서도 꿋꿋하게 해냈는데 이 정도 위기를 못 넘길까"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힘이 불끈 솟았다.
조씨와 박씨 같은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렇다. '어렵다고 피하려 하지 않으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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