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성범죄, 그보다 더 나쁜 생각들

술에 취해 사무실 소파에서 졸고 있는 중년 남자. 물컵을 들고 들어온 여비서.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소리. 여비서는 그가 자신의 엉덩이를 만졌다 하고 남자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사장인 장인도, 그의 아내도 여비서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겠느냐며 그를 몰아세운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남자는 CCTV도 들이대고 거짓말탐지기에도 적극 응하지만 문제의 장면에 이르러 화면은 지직거리고 탐지기에선 거짓이라는 경고음이 울릴 뿐이다. 그의 결백을 믿는다던 가정부도 뒤돌아서서는 방문을 잠그고 자야겠다 다짐한다. 아무도 믿지 않는 그의 결백을 어리석게도 나는 믿었다. 무능하고 눈치 없고 소심하지만 눈물 많은 선량한 인물. 그에게 CCTV 속 화면을 지워 증거로 들이댈 영악과 파렴치는 없다고 믿었다. 여비서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든 접촉은 있었겠지만 추행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해실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순진한 믿음을 무참히 깨뜨렸다. 익살스런 고해 모습에는 웃음소리가 효과음으로 깔렸다.

술에 취해 여기자의 가슴을 만진 정치인이 있었다. 그가 내놓은 해명은 음식점 여주인인 줄 알았다는 것. 결국 그 해명이 그의 정치 생명을 앗아갔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잘못할 수 있다. 사람은 그럴 수 있다. 내 사람은 그럴 수 없다고 무참히 칼로 베는 엄격과 가혹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추행은 잘못이고 범죄이지만 용서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의 결백 증명이나 착각 해명이다. 한마디로 죄질이 나쁘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쁜 것은 그런 범죄와 파렴치가 농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음식점 여주인으로 착각했다는 게 해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행위로 드러나지 않는 한 생각은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범죄를 양산하는 토양이 된다. 특히 성범죄는 그런 생각의 영향력이 크다.

성폭력범에게 유기징역의 상한인 25년형이 잇따라 선고되는 등 성범죄자에 대한 형량이 강화되고 있다. 형사사건에서 성범죄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아무리 영혼의 살인이라지만 실제 살인보다 형이 더 무거운 것은 문제가 있다는 반론이 있지만 양형 기준을 새로이 정비하자는 것이지 성범죄자의 형을 가볍게 하자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엄중한 처벌에 대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지금껏 우리 사회는 앞에서는 근엄과 엄숙을 강요하지만 뒤돌아서는 술과 성(性)에 관대했다. 법도 재판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제 법도 재판도 바뀌고 있다. 생각들이 모여 법과 재판을 바꾸었고 바뀐 법과 재판이 다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것이다.

김계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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