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 한잔] 여성 군법무관 출신 김미진 변호사

딱딱한 軍 거친 소령 법무관 "사회서도 부드럽게 일처리"

"남성들만의 세계로 여기는 군은 꼭 한번 도전해볼 만한 곳이었죠. 군은 '또 하나의 사회'라 불릴 만큼 광범위한 조직이에요. 군의 일원으로 근무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지난 3월 5군지원사령부 법무실장(소령)을 마지막으로 예편한 김미진(37·사진) 씨. 또 다른 세상을 가슴에 품는 변호사가 되고파 이달 중순 대구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는 10년간 군 법무관으로 각급부대 법무참모, 검찰부장, 제2작전사령부 보통군사법원 판사, 육군대학 교관, 국방부 여성법률상담관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대구 토박이로 두 자녀의 엄마이기도 한 김 변호사는 2001년 군법무관 임용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거쳐 2003년 임관했다. 그때 우리나라 군 사상 10년 만에 여성법무관 5명이 한꺼번에 임용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이전엔 1990년에 임용된 여성 법무관 1호 이은수 소령이 유일했다. 이은수 법무관은 얼마 전 첫 여성법무장군(준장)이 됐다.

"첫 꿈은 역사학자였죠. 중 3때 법정드라마에서 변호사가 열성을 다해 피고인을 변호한 결과 무죄가 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보고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후 법대를 다니며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중 대학 선배인 이은수 준장의 소개로 군법무관 제도를 알게 됐고, 여성들이 많이 진출하지 않은 군에 대한 호기심과 남성 속에서 자신의 역량도 시험해 볼 겸 군법무관에 도전하게 된 것.

임관 후 김 변호사는 군에 대한 사전지식도 모자랐고, 논리와 이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던 법학도로서 '안 되면 되게 하라'식의 비이성적인 요구가 이해되지 않아 힘들었다. 그러나 법(法)의 글자풀이가'물 흐르듯 가는 것'이라는 걸 안 후엔 군에 대한 애정과 소명 의식이 생겨났다.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 준사관급 이상 군 간부는 10만 명 정도로 이 중 여군과 여군무원은 약 4천 명입니다. 이들에 대한 군의 특별처우와 대우는 거의 없는 편이죠. 남자 군인들조차 여군이나 여군무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군 시절 수사 때 사복을 한 그에게 피의자들이 "검찰관은 어디 가고 아가씨가 있냐"고 되물어 "검찰관이 바로 나"라고 설명하며 신분증을 보여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김 변호사가 5군수지원사령부 내 여성고충상담관으로 있을 때는 군 내 성희롱 문제와 여성복지 및 육아문제를 많이 맡았었다.

"이젠 사회에서 판사와 검사의 법리에 대한 방패역할을 하게 돼 책임감이 더 무겁습니다만 군에서 법조 3륜에 해당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의 임무를 두루 거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 변호사는 국가유공자 및 군 행정 관련 법적인 문제와 대학원에서 전공한 부동산 물권파트에 강점을 갖게 했다.

"여성의 부드러움이 오히려 나약함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으나 이성적 판단에 따라 적재적소에서 부드럽게 일을 처리한다면 충분히 상쇄될 수 있지 않겠어요."

늦었지만 명실상부 사회 첫발(?)을 디디게 된 김 변호사는 대지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군과 법조에 대한 경험,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열심히 업무에 매진해 신뢰를 줄 수 있는 변호사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법은 흔히 흙에 비유됩니다. 흙이 추운 겨울의 고통을 이겨내고 싹을 띄우지만 논리와 철리에 어긋나면 모든 걸 덮어 버립니다. 저는 이 흙의 교훈을 늘 잊지 않을 겁니다."

김미진 변호사는 대구 경화여고와 경북대 법대(94학번)를 졸업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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