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밥줘."
김성수(25'뇌병변 장애 3급) 씨는 병실 침대에 누워 밥을 찾았다. 24일 오후 대구의 한 병원에서 만난 나규순(가명'52'여) 씨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 씨는 "한 달간 금식이라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데도 아들이 매일 밥을 찾는다"며 "갈수록 어리광만 늘어 큰일"이라고 했다. 성수 씨는 지난달 22일 아파트 6층에서 떨어지면서 크게 다쳤다. 등뼈와 골반, 두 다리가 골절된 성수 씨는 왼쪽 다리 수술 후유증으로 온몸에 세균이 감염되는 패혈증까지 왔다. 9년 전 남편을 잃은 나 씨는 아들마저 잃을 처지에 몰렸다.
◆엄마의 욕심
성수 씨는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달랐다. 여섯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난 성수 씨는 생후 4개월 때 손가락 하나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나 씨는 아들이 평범하게 자라주길 바랐다. 돈도 명예도 필요 없으니 아들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나 씨에겐 이것조차도 과한 욕심이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수시로 발작을 일으켰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뇌병변장애 판정을 받았고, 지적 수준도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멈췄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살아주면 그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와 남편은 아들을 일반 학교에 보냈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특수학교에 보낼 시간과 돈이 충분치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학교생활은 아들이 넘어야 할 첫 번째 인생의 관문이라고 여겼다.
성수 씨는 틈만 나면 학교가 싫다며 울부짖었다. 아들은 어느 날 꾀를 부렸다. 학교에 가는 척하다 자기 방안에 숨은 뒤 아버지가 출근하면 그제야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성수를 장롱에 많이 숨겨줬어요. 얼마나 학교가 싫었으면 그랬을까. 친구들이 바보라고 놀리니까 엄마 마음이 미어졌죠."
집 근처에서 일반 초'중학교를 졸업한 성수 씨는 고등학교 때 특수학교에 진학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리고 공부하면서 성수 씨의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
◆남편의 죽음
나 씨는 남편을 미워했다. 큰딸 현주(가명'30) 씨가 여덟 살, 성수 씨가 세 살 때 남편은 회사에서 만났다는 젊은 여자를 집에 데려왔다. 가족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당당하게 소개하는 남편이 죽도록 미웠다.
남편은 아내를 여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나 씨는 그저 밥해주고 자식을 돌보는 사람일 뿐이었다. 남편은 가끔씩 "그 여자가 만들어줬다"며 잡채를 집에 가지고 오기도 했다. 나 씨는 낯선 여자가 해온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잡채와 함께 남편을 향한 사랑도 그 속에 던져버렸다.
미움이 싹이 된 탓일까. 남편은 199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누웠다. 더는 줄 정이 없다고 여겼었는데, 나 씨는 암과 싸우는 남편을 3년간 간호했다. 자신에게 사랑 대신 상처만 주고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남편이 밉고 또 가여웠다. 실컷 미워할 수 있게 강한 남편으로 돌아와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병원에서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고도 남편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안방과 선친의 묘, 남편의 직장 등 그의 온기가 닿았던 곳을 쫓아다니며 굿판을 벌였다. "제발 내 남편만 살려주오. 내 모든 것을 하겠소." 팔공산에 올라 800만원을 주고 굿을 했지만 이 모든 것은 헛된 것이었다.
어느날 남편은 죽음의 신호를 보냈다. 숨이 멎을 듯하면서도 버티는 남편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성수 씨가 탄 통학버스가 아파트 앞에 섰다. 아들이 집 안에 들어설 때까지 남편은 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 사람이 성진이를 보려고 기다렸는가 봅니다." 나 씨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2001년 3월 7일 남편은 가족을 버리고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다.
◆남은 건 아들뿐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나 씨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아파트 청소 일을 한다. 계단을 닦고, 엘리베이터 청소를 하면서 속으로 수백 번 되뇐다. '성수야, 빨리 일어나라. 성수야, 집에 가자.' 청소일이 끝나면 아들이 있는 병원으로 와 밤을 지새운다. 성수 씨는 왼쪽 다리를 수술한 뒤 패혈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양쪽 다리에 철심을 박아둔 것은 부러진 척추가 다리뼈와 어긋나게 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체온이 38℃ 이상 올라갈 때 성수 씨는 팔다리를 휘두르며 격하게 저항한다. "엄마 아파요! 엄마, 엄마!" 입원한 날부터 지금까지 한 달 넘게 밥을 먹지 못하고 링거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있다.
성수 씨가 병원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비급여 항생제와 수술비, 입원비 등 성수 씨 앞에 쌓인 병원비는 790만원이다. 나 씨는 급한 마음에 동네 사람에게 일수 대출로 100만원을 빌렸다. 혹시 아들을 잃을까 봐, 병원비를 내지 못할까 봐 나 씨는 수만 가지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은 오늘도 엄마와 밥을 찾는다. "엄마, 밥 주세요."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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