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 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극을 보았다고 말하는 관객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다. 그들은 배우들이 어떻게 그 많은 대사를 외울 수 있는지부터 깜깜한 무대에서 어떻게 배우들이 등장하고 퇴장할 수 있는지 등 여러 가지 궁금증을 쏟아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 관계자들은 그렇게 깊게 고민한 적이 없는 문제에 관객은 관심을 갖고 궁금해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연극인들도 처음에는 그런 일반 관객이었고 그와 비슷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익숙해져서 그런 느낌들을 거의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처음의 느낌들을 되살려 연극을 처음으로 접하는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연극의 제작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려 한다.
먼저, 연극을 제작할 때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시작하는 작업은 작품 선정이다. 제작자는 셰익스피어처럼 유명한 작가의 외국작품을 선정할 수도 있고 한국작품을 선정할 수도 있다. 혹은 국내작가를 선정해 창작 초연작을 써줄 것을 부탁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쳐서 희곡이 선정되면 작품을 연출할 연출가를 선정한다. 물론 연출가가 먼저 정해진 가운데 그 연출가가 작품을 선정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인 경우다. 그리고 작품과 연출자가 선정되고 나면 가장 중요한 배우 선정 작업이 이루어진다. 연극을 공연할 극단의 단원 혹은 오디션 등의 과정을 거쳐 배우를 선정한 후에는 두 달 내외의 연습과정을 거쳐 공연을 올린다. 상황에 따라 연습기간은 더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다음으로, 많은 관객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엄청난 분량의 대사 암기는 연습기간 동안 매일 반복하는 훈련을 통해 충분히 가능해진다. 연출자와 배우가 함께 대본을 읽으며 작품을 분석하고 작가의 의도 혹은 연출자의 의도에 맞게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때 대본을 함께 읽는 것을 말 그대로 '리딩'이라고 부른다. 그런 과정을 거쳐 대사가 어느 정도 암기가 되고 작품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면 배우들은 대본을 손에서 놓고 실제 공연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연기를 시작한다. 이러한 움직임 혹은 행동선을 흔히 '브로킹'이라고 부르는데 이때부터 연출자의 역할이 더욱 커지곤 한다.
그리고 작품의 성격에 맞는 무대와 각종 소도구, 소품 등을 직접 제작하거나 구입한다. 또한 공연하게 될 극장의 시스템을 고려하여 조명을 디자인하고 각종 음향효과 및 작품의 성격을 결정짓고 작품의 주제를 부각시킬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하거나 선곡하는 작업도 거친다. 물론 배우가 연기할 인물의 성격에 맞는 의상을 제작하거나 구입하며 나이나 성격 등을 표현할 수 있는 분장도 미리 디자인한다. 이러한 과정은 대부분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각 분야의 전문스태프가 수행하게 되는데 소극장 공연의 경우에는 배우가 일정 부분 그 역할을 분담하기도 한다.
연출자와 배우가 연습실에서 공연작품 연습에 한창 몰두하고 있을 때 연습실 밖에 있는 스태프는 더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기획과 홍보 등을 담당하는 이들은 배우와 연출자가 대본을 읽으며 조금 여유를 가지고 있는 단계부터 극단의 홈페이지와 각종 인터넷 예매사이트에 공연을 등록해 관객이 티켓을 예매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공연을 홍보하는 등의 일로 이미 여유가 없다. 특히 모든 배역이 정해지고 나면 포스터 등의 각종 홍보자료를 만들고 직접 공연홍보물을 돌리기도 하며 바쁘게 뛰어다닌다. 물론 최근에는 인터넷 홍보가 거의 주를 이루고 있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발보다는 손이 바빠 손으로 뛴다고 표현할 정도의 시대가 되었다.
기획이나 홍보 등의 스태프와 작품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연출자와 배우 등 한 편의 연극 공연을 위해 모인 이들이라면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관객의 소중함을 안다. 관객이 없으면 공연을 할 수 없고 연극의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연극이라는 예술도 결국 돈을 받고 팔아야 하는 문화상품이며 잘 팔릴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 자신들이 맡은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연극의 제작과정은 관객이라는 소비자를 위해 문화상품을 만드는 생산과정인 셈이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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