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중국 공산화 기여한 장쉐량

1936년 오늘 중국 국민당 동북군 사령관 장쉐량(長學良'1901~2001)이 홍군(紅軍) 토벌을 독려하기 위해 방문한 장제스를 감금했다. 바로 세계를 놀라게 한 '시안(西安)사변'이다. 이 쿠데타를 통해 장쉐량은 홍군과 힘을 합쳐 만주를 점령한 일본군과 먼저 싸워야 한다는 요구를 관철했지만 그 대가로 55년간 감금생활을 해야 했다.

만주군벌 장쭤린(張作霖)의 아들로 아버지가 일본 관동군에 폭사(爆死)하자 장제스 아래로 들어갔다. 장제스의 명령으로 홍군과 싸웠으나 하기 싫은 싸움이었다. 홍군과의 내전보다는 일본군 격퇴가 먼저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일본군에게 아버지도, 영토도 잃은 원한도 작용했다. 그러나 장제스는 단호했다. 홍군 격멸이 먼저라는 것이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등의 중재로 장제스는 장쉐량의 요구를 수용하게 됐고 이후 제2차 국공합작이 성사됐다. 이에 따라 국민당의 총구는 일본군으로 향하게 되고 장제스에 쫓겨 옌안(延安)까지 도망갔던 홍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결국 장쉐량은 중국 공산화에 결정적 공헌을 한 셈이다. 만약 시안사변이 아니었다면 장제스는 패권을 잡았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국민당은 부패'무능으로 내부에서 먼저 무너지고 있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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