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찾아서] 52<끝>. 행복 바이러스

온기 전하는 실버 합창단 선율 추위에 얼었던 마음까지 '훈훈'

아쉬웠나 봅니다. 이 글을 쓰며 한 시간 넘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한 줄을 채 넘기지 못했습니다. 무슨 거창한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결국 하고픈 말은 딱 한마디였습니다.
아쉬웠나 봅니다. 이 글을 쓰며 한 시간 넘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한 줄을 채 넘기지 못했습니다. 무슨 거창한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결국 하고픈 말은 딱 한마디였습니다. "고맙습니다." 한 해가 지난다고 새로운 태양이 뜨는 것도 아닙니다. 해가 바뀌는 것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고 위로하며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해가 바뀌면 늘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하지만 올해는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어떨까요? 왜 고마운 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인사를 하면 새삼 고마운 마음이 생길 겁니다. 두 팔을 활짝 벌려 새 해를 맞는 아이들처럼 누구에게나 고마워하는 넉넉한 마음이 우리에게 생기길 기도합니다. 사진=한삼화(제25회 매일 전국어린이사진공모전 금상), 글=김수용기자
행복은
행복은 '야간산행'이다. 주말, 일찍 저녁밥을 챙겨먹고 가까운 산을 오른다. 초저녁이지만 산속이라 암흑천지다. 발 아래 보이는 도심의 불빛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추운 겨울이지만 어느새 이마에 땀이 맺힌다. 이따금 스쳐가는 등산객 외에 인기척도 없다. 아내가 멧돼지 조심하라지만,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나와 내 숨소리 그리고 어둠뿐이다. 산 아래에선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지만, 오르다 보면 어느새 깨끗하게 비워진다. 헝클어진 머릿속과 가슴을 정화시켜주는 야간산행길은 행복길이다. 글/일러스트 = 고민석 komindol@msnet.co.kr

일 년간 숨 가쁘게(물론 저 혼자만) 달려온 '행복을 찾아서' 시리즈가 마지막 회를 맞았습니다. 1월 1일 첫 회가 나갈 때만 해도 일 년간 행복을 이야기하고 나면 뭔가 결론이 나올 줄 알았는데 너무 순진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행복에 대한 지식은 물론 더 큰 것도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작은 여유'입니다. 배포 크게 껄껄 웃을 정도는 안 되도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하고 다시 고마워하고 다시 되새기는 여유. 덕분에 마음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게 됩니다.

마지막 회를 맞아 뭔가 대단한 글을 쓰려고 했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행복은 아버지 손의 굳은살처럼 딱딱하고, 아기 발처럼 말랑하며, 낙엽 태우는 연기처럼 덧없습니다. 그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면 그뿐, 마치 수학 공식이나 물리 법칙처럼 행복을 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독자와 함께했던 '행복을 찾아서'를 독자와 함께 마감하려 합니다. 친절한 버스 기사 덕분에 하루가 행복해졌다는 글을 보내주셨던 수필가 김성한 님의 글입니다. TV에서 '청춘합창단'을 보며 왠지 모를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까? 짐작건대 그 눈물은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마라톤을 완주한 어느 선수의 모습을 보며 흘린 눈물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2011년을 완주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역시 행복한 완주를 해내리라 믿습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우리는 행복바이러스를 부른다. "소리 높여 외쳐라, 하늘이 떠나가게. 손에 손을 맞잡고서 다함께 노래 부르자 ♬"

빠알간 조명이 환한 무대에는 늦깎이 학생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우정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슴팍 파인 하얀 드레스를 입은 늙은 여학생들의 얼굴에는 홍조가 물들어 있다. 희끗희끗한 머리이지만 까만 나비넥타이가 잘 어울리는 남학생들도 열(列)지어 합창을 한다. 한 해의 뒷모습이 애잔한 12월 초, 대구 중구 분도극장에서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송년 가곡연주회'가 열렸다. 평균 나이 60세가 되는 실버학생 20명이 지난 3년간 갈고 닦은 노래실력을 선보이는 날이다.

땅거미가 스멀스멀 내려앉은 저녁 무렵이 되자, 회원 가족과 인근 지역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다. 손녀의 부축을 받으며 연주회장에 들어오는 허리 굽은 할머니도 보인다. 120석이나 되는 객석이 공연 시작 30분 전에 꽉 차 버렸다. 시간에 꼭 맞춰 온 죄(?)로 서있는 사람도 보인다. 몇 달 전 시청자들의 눈을 꽁꽁 동여맨 '청춘합창단'이라는 프로그램이 한몫 거든 것 같다.

이윽고 막이 오른다. 까만 연미복을 입은 바리톤 학생이 무대 위로 올라선다. 부를 곡은 민요풍인 '박연폭포'란다. 아마추어라 그런지 다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웬걸, 피아노 선율이 길을 터주자 물 흐르듯이 거침없이 부른다. 덩실덩실 춤까지 추며 부르자 관객들의 어깨도 덩달아 들썩들썩한다. 이어서 소프라노의 '그리운 금강산', 바리톤의 '오 솔레 미오'(O sole mio), 테너의 '석굴암' 등 독창만 해도 무려 18곡이나 된다. 이중창, 합창도 한다.

특별 출연한 초등학생 2명이 동요를 부르자 늙수그레한 학생들 얼굴에 동심(童心)의 꽃망울이 조롱조롱 맺힌다. 마지막으로 관객과 함께 부른 '사랑으로'라는 합창은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노래가 시작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일어서더니 옆 사람과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른다. 심지어 어깨동무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천장을 타고 내려오는 조명도, 창문 너머 겨울 보름달도 함께 따라 부른다. 늙은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마음 고생깨나 했을 젊은 교수가 마무리 인사를 했다. 그 목소리가 울컥한다. "가곡연주회가 추위와 불경기에 움츠러든 우리네 삶에 온기를 전해주는 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 바이러스만을 부르겠습니다."

김성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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