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사는 조선 세조 때의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본래 취금헌 박팽년만이 향사되어 오다 박팽년의 현손인 계창공이 기일 날 여섯 신하가 함께 사당문 밖에서 서성이는 꿈을 꾼다. 현손은 이에 놀라 나머지 다섯 신하의 위패도 함께 모시게 됐다.
단종 복위에 실패한 박팽년은 국문을 당하게 된다. 평소 그의 재주를 높이 산 세조가 조용하게 다가가 "네가 마음을 바꿔 나를 섬긴다면 목숨만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며 구슬렸다. 이 말을 들은 박팽년은 아무 말 없이 웃고는 그저 '나으리'라고 부를 뿐이었다.
약이 오른 세조가 "네가 일전에 이미 신하라고 말한 바 있으니 지금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자 "저는 상왕(단종)의 신하이지, 어찌 나으리(세조)의 신하가 되겠습니까. 충청도 관찰사로 있던 1년 동안 장계와 문서에 스스로 신하라고 일컬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세조는 그가 올린 장계를 확인해보았다. 신하 신(臣)자 대신 거인 거(巨)자가 씌어 있었다. '신하' 신, 박팽년이 아니라 '거인' 거, 박팽년이었다. 원래 장계의 '臣'자는 신하를 낮추어 불러 작게 쓰는 법이다. 박팽년은 국록도 성삼문처럼 창고에 고스란히 쌓아두었다.
금부도사는 형장으로 끌려가는 그를 보고 말했다. "고집을 잠깐 거두시오면 온 집안이 영화를 누리실 텐데. 무슨 고집을 그렇게도 부리십니까?" 박팽년은 "더럽게 사느니 깨끗하게 죽는 것이 나으니라"는 말을 남기고 생의 종지부를 찍는다.
"가마귀 눈비 마자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오랴/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이시랴." 박팽년은 세조의 청을 이 '단심가' 한 수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세조를 거부했던 박팽년(병조참판)은 이조판서인 아버지 박중림, 다른 4형제, 아들인 헌, 순, 분 등과 함께 처형됐다. 부인과 제수, 자부들은 모두 관비로 내쳐졌다.
박팽년이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숨을 거둘 때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인 성주 이씨가 임신 중이었다. 조정에서는 친정인 대구로 내려간 이 씨가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했다. 마침 박팽년의 여종 또한 그 무렵 임신을 했다. 이 여종이 이 씨에게 말하기를 "마님께서 딸을 낳으시면 다행이겠으나, 아들을 낳는다면 쇤네가 낳은 아기로 죽음을 대신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 씨가 해산을 하니 아들이었다. 마침 여종은 딸을 낳았고 이 씨 부인의 아들과 맞바꾸고는 이름을 박비(朴婢)라 짓고 길렀다. 박비가 장성한 뒤에 경상감사로 온 이모부 이극균(李克均)을 만나게 되었다. 박비를 본 이극균은 눈물을 흘리며 "네가 이미 장성하였는데, 왜 자수하지 않고 끝내 조정에 숨기는가" 하며 자수를 권했다. 성종이 특별히 용서하고 이름을 비에서 일산(壹珊)으로 고치게 했다.
김성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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