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부부의 날 잊지 말자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5월에는 가정과 관련된 행사가 많다 보니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소홀히 여기는 기념일이 있다. 바로 '부부의 날'(21일)이다.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부부의 날은 핵가족시대 가정의 핵심인 부부가 화목해야만 청소년 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법정기념일이다. 대부분의 부부들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챙기다가 '자신들의 날'을 잊어버린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살해된 여성의 수는 최소 65명에 이른다. 이는 언론에 보도된 사례만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부부간의 다툼으로 인한 살인 사건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부부의 절반가량은 가정폭력의 위험 속에 있다는 조사도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0년 실시한 가정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기혼 남녀 2천659명 중 무려 53.8%인 1천550명이 가정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폭력을 당하고도 경찰 등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도 62.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는 '심각하지 않아서' '창피해서' '차마 배우자를 신고할 수 없어서' '신고해도 소용없어서' 등을 꼽았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일어난 경기도 수원 살인사건에서도 이런 인식이 문제였다. 당시 112센터 근무 경찰관은 공포를 호소하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서도 "부부싸움인 것 같은데…"라며 소극적으로 대처해 신고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당시 범인이 피해 여성을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주민도 있었지만 부부싸움인 줄 알고 경찰에 즉시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정폭력에 대한 경찰의 현장 조사권이 강화되면서 가정폭력이 줄어들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가정폭력에 대해 경찰 등 국가의 개입을 강화해 왔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경찰이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가해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더라도 강제로 집안으로 들어가 폭력 실태를 조사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했다.

또 지난해 10월부터 긴급임시조치권 신설로 경찰이 법원 결정 없이도 가정폭력 사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100m 이내 접근을 할 수 없도록 했다. 피해자가 보호시설에서 생활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 같은 권한 행사를 꺼려왔다. 가정폭력은 남의 집안일이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오래된 통념 때문이었다. 실제 대구에서 가정폭력으로 긴급임시조치권을 발동한 것은 지금까지 단 한 건에 불과하다.

가정폭력과 부부갈등은 이혼으로 이어져 결손가정이 늘어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청소년 자살과 학교폭력 문제도 결국 가정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문제 청소년'이 있는 곳에 '문제 가정'이 있는 것이다.

요즘 일어나는 가정폭력 사건을 보면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가 아니라 '칼로 살베기'라는 생각이 든다. 부부가 공권력의 힘을 빌려 당사자끼리 벌인 다툼을 해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다가오는 부부의 날은 잊어버리지 말고 부부가 된 인연을 되새겨보는 날로 삼는 건 어떨까. 배우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배려하면서 평생을 함께 살아가자고 약속하는 날로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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