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재자들은 왜 음악을 정치에 동원할까

독재자의 노래/민은기 엮음/음악사연구회 기획/한울 펴냄

1970년대, 사람들은 늘 같은 노랫소리에 단잠을 깼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만드세~" 집 앞 골목을 지나는 쓰레기 수거차량, 지직거리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새마을 노래'는 얼른 일어나 움직여야 한다는 의무감과 뭔가 하지 않으면 무능하다는 죄책감을 자극했다.

학교에서는 아침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국민체조'를 했다. "국민체조 시~작. 헛, 둘, 셋, 넷." 음악과 뒤섞인 구령에 맞춰 체조를 하고, 교실에 들어오면 입을 모아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 점심시간에는 '혼분식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오후 5시 온 국민이 일시 정지해야 하는 국기 하강식 시간에도 거리 어디에서나 '음악'이 흘러나왔다.

박정희 시대, 세상은 온통 무언가를 지시하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마을 노래' '잘살아보세' '나의 조국' '조국 찬가'가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렸다. 이 노래들에는 대부분 '명랑하고 씩씩하며 힘차게 부르라'는 주문이 붙었다.

그러나 관 주도형 노래운동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스타일이 낡아빠진데다 가사가 딱딱하고 작품 자체가 무미건조한 이 노래들은 한마디로 '재미'가 없었다. 정권은 건전가요를 확대보급하기 위해 '반국가적이며 불순한 노래'들을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한국 대중음악의 잔혹사가 시작되는 계기였다.

대중가요에는 왜색적이며 저속하고 퇴폐적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공전의 히트를 쳤던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는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금지됐고, 송창식의 '왜 불러'는 반말을 한다며 금지곡이 됐다. 이장희의 '그건 너'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고, 조영남의 '불 꺼진 창'은 창에 불이 꺼졌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창법이 저속하고 불신감을 조장한다는 이유가 붙었고, '행복의 나라로'는 '그렇다면 지금은 행복의 나라가 아니라는 뜻인가'라며 금지곡 처분을 받았다.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하면 사회에 우울함과 허무감이 조장된다'며, 정미조의 '불꽃'은 공산주의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이금희의 '키다리 미스터 킴'은 '단신인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독재 정권은 음악을 통해 집단적 정체성을 강화했고, 입맛에 맞지 않는 음악을 가차없이 제거했다.

'독재자의 노래'는 근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독재자 8명을 선별해 이들과 음악의 관계에 대해 연구한 책이다. 나폴레옹, 스탈린, 무솔리니, 히틀러, 마오쩌둥, 김일성, 박정희, 카스트로 등 8명의 독재자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독재를 지지하고 강화하는 데 음악을 사용했는지,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탐구한다.

독재자들은 대부분 음악을 정치에 동원했다. 나폴레옹은 신화를 바탕으로 쓰이던 기존 오페라를 역사 속 영웅이 등장하는 내용으로 바꿨다. 마오쩌둥은 전통 경극을 혁명영웅 이미지를 강조하는 현대적 경극으로 개조했다. 히틀러는 민족 영웅을 내세운 장대한 서사시와도 같은 바그너 음악극에 열광했고, 작품 안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반유대주의 사상에 공감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은 독일 대중들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청각 장애라는 시련을 극복하고 음악가로 승리한 베토벤의 인생 여정은 자연스럽게 히틀러와 오버랩됐고, 베토벤은 민족 공동체의 영원한 수호자로 각인됐다. 베토벤 음악은 독일인의 우월감을 과시하는 수단이었으며 인류가 한 형제라는 메시지는 독일 팽창주의 정책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북한 김일성도 음악을 우상화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1972년 최고 권력자가 된 김일성은 자신의 혁명과업을 찬양하는 노래를 양산했는데, 2000년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 창작음악의 80%가 위인의 공덕을 기리는 '송가'다.

독재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합창이다. 합창은 애국심과 단결심, 민족의 얼을 가장 잘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정책적으로 장려됐다. 어머니합창단, 주부합창단, 어린이합창단, 중고등부합창단, 직장합창단 등 각급 학교나 직장, 취미생활에서 합창단이 조직됐다.

책을 엮은 서울대 음악대학 민은기 교수는 "독재자가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를 음악의 속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음악은 다른 어떤 예술보다 인간의 정신세계와 직접 맞닿아 있으며 독재자들은 대중을 통제하고 세뇌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공학적인 고려 속에서 음악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336쪽. 1만8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