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몸 절반에 화상 입은 현준이

전교생 저금통 털었지만 치료비 3천만원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가스 폭발로 전신 화상을 입은 김현준 군이 엄마 박순옥 씨와 함께 학교 친구들이 보낸 편지를 읽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황수영기자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가스 폭발로 전신 화상을 입은 김현준 군이 엄마 박순옥 씨와 함께 학교 친구들이 보낸 편지를 읽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황수영기자

"친구들이 빨리 나아서 학교에 오래요. 나도 학교에 빨리 가고 싶어요."

지난달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경북 칠곡군 초등학생들이 보낸 편지 87통이 도착했다. 삐뚤삐뚤 손글씨로 적은 편지의 수취인은 김현준(11) 군이다.

초등 5학년인 현준이는 전체 몸 절반에 심한 화상을 입고 두 달째 서울에서 치료받고 있다. 이달 17일 병원에서 만난 현준이는 친구들이 보낸 편지를 읽고 있었다.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친구들이 있어 현준이는 외롭지 않다고 했다.

◆현준이의 사고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한강성심병원. 팔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현준이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여기 팔에 물집이 생겼어." 엄마 박순옥(51) 씨가 팔에 감긴 붕대를 풀어주자 팔에 생긴 물집을 바늘로 터뜨렸다. "애가 의젓해요. 수술도 여러 번 하고 많이 힘들텐데 잘 견뎌주는 현준이가 정말 기특해요."

사고는 올 6월 30일 오후 3시쯤 칠곡군 가산면의 현준이 집에서 발생했다. 박 씨 부부는 3년 전 이곳 건물 한 채를 빌려 1층은 가정집으로 쓰고 2층에서 선짓국 식당을 하고 있었다. 항상 식당 일로 바쁜 부모 때문에 아이는 혼자 밥을 챙겨 먹는데 익숙했다. 이날 현준이는 1층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먹기 위해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사고 발생 30분 전 20㎏짜리 가정용 가스를 교체했지만 벨브 고장으로 가스가 샜던 것. 그 순간 '펑'하고 가스가 폭발했고 불길은 온몸에 옮겨붙었다. 폭발로 건물 창문은 산산조각이 났고 가구가 쓰러져 현준이를 덮쳤다. 현준이는 위기 순간에도 의젓했다. 쑥대밭이 된 집에서 기어서 도망쳤고 현장에 도착한 119 구급대에 실려 대구의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엄마 박 씨는 "폭발 때문에 우리 집에서 500m 정도 떨어져 있던 슈퍼마켓에 진열돼 있던 과자가 다 넘어졌다"며 끔찍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응급실에 누워 있는 아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온몸에 박힌 유리를 꺼내니 양손에 수북하게 쌓였다. 여태까지 현준이는 화상 부위를 잘라내고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만 세 차례나 받았다. 허벅지나 다른 부위에서 살을 뜯어내 상처 부위에 이식하면 살이 뜯겨나간 자리가 마구 쑤신다.

◆갈 곳 없는 가족들

박 씨 부부는 사고난 집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서울로 뛰쳐왔다. 서울에 마땅히 지낼 곳이 없어 박 씨는 현준이 병실에서, 아빠 김정도(56) 씨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매일 쪽잠을 자고있다. 만신창이가 된 집과 불어나는 병원비, 현준이의 상처만 생각하면 부부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현준이가 사고를 당한 집은 식당을 하기 위해 보증금 3천만원에 월세 150만원을 주고 2년 계약으로 빌린 집이다. 현준이 치료비만 생각해도 눈앞이 캄캄한데 수리비까지 집주인에게 물어줘야 할 형편이다.

병원비도 문제다. 화상 수술 시 사용되는 재료가 비급여 대상이 많은 데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현준이네 가정은 의료비 경감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얼마 전 1차 병원비 500여만원을 냈는데도 이번 달에 내야 할 병원비만 2천700만원 가까이 된다. 또 현준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서 화상 자국 수술도 계속 해야 하는데 이들 가족에게는 큰 부담이다. 현준이의 주치의 임해준 화상외과 교수는 "아이가 아직 어려서 화상 상처 회복 속도가 상당히 빠르고 힘든 수술도 씩씩하게 잘 견디고 있다. 현준이가 자라는 만큼 흉도 커지기 때문에 어른이 될 때까지 여러 차례 수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준아, 빨리 학교에 돌아와"

현준이가 다니는 학교의 전교생은 87명. 5학년 전체 학생이 10명 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다. 1학년 동생부터 6학년 형, 누나들까지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편지를 써 서울의 병원으로 날려보냈다. 직접 잔디밭에서 찾은 네잎클로버를 편지에 붙인 친구, 삐뚤삐뚤 손글씨로 '오빠야, 학교에서 빨리 보자'고 적어 격려하는 동생들이 있는가 하면, '걱정하지 마시고 힘내세요'라며 현준이 엄마 아빠를 위로하는 의젓한 친구들도 있었다.

현준이 눈에도 보고 싶은 친구들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방학하기 전에 준영이는 매일 내 자리에 가서 말을 걸었대요. 투명인간 놀이요. 나보고 빨리 나아서 학교에 오라고 매일 이야기했대요.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요."

친구들은 또 현준이를 돕기 위해 돼지저금통을 털었다. 초등학교 교직원과 학부모, 학생들이 힘을 모아 500만원이 넘는 성금을 모았고 "병원비에 보태라"며 현준이에게 전달했다. 이웃 주민들도 힘을 보탰다. 노인정 어르신들은 쌈짓돈을 꺼냈고, 동네 청년회와 이웃들이 십시일반 모아 준 돈으로 박 씨 부부는 병원비 500만원을 먼저 계산했다. 현준이의 마음 속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것은 이웃과 친구들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이다.

"현준이 학교 친구들, 동네 사람들, 우리 주변에 전부 고마운 사람들 뿐이에요."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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