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세동은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빨리 뛰는 대표적인 부정맥 질환이다. 가슴 두근거림이나 불편감, 어지럼증으로 병원을 찾는데 특별히 심장에 질환이 없는 건강한 성인도 흥분 상태나 과도한 음주 후에 이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일과성이므로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종전에 심장이나 폐질환이 있는 환자라면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심장이 마구잡이로 뛰는 심방세동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는 것은 심장 안에서 일종의 전기신호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전기신호를 일으키는 특수한 세포가 우심방 위쪽에 자리 잡은 '동방결절'이다.
여기서 발생한 전기신호는 우심방 아래쪽에 있는 '방실결절'을 통해 마치 전기선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심장의 특수 섬유를 지나 정해진 경로를 따라 심실에 전달된다. 심실을 둘러싼 심장근육은 신호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수축한다.
그러나 심방세동의 경우 이러한 정상적 경로를 통하지 않는다. 동방결절에서만 전기신호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심방 곳곳에 있는 심장근육들이 이런 신호를 동시 다발로 보낸다.
이처럼 무질서하게 발생한 신호는 방실결절에 전달된 뒤 심실을 둘러싼 심장 근육이 마구잡이로 뛰도록 만든다. 이것이 바로 심방세동이다.
심방세동은 대체로 심장판막(심장 내에서 피가 한 방향으로만-좌심방→좌심실, 우심방→우심실, 좌심실→대동맥-흐르도록 조절하는 막)이나 관상동맥(심장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 질환이 있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심방세동이 생기면 가장 위험한 것이 혈전증이다. 혈전증은 심장 안에서 혈액이 굳어 생긴 혈전(피떡)이 혈관을 따라 떠돌다가 주요 동맥을 막아 발생하는 합병증. 머리 혈관이 막히면 뇌경색(중풍), 복부 혈관이 막히면 장이 썩는다. 드물지만 관상동맥이 막혀 심근경색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주요 장기의 기능을 순식간에 마비시킬 수 있다.
◆전기신호 통로 만드는 수술법
심방세동의 여러 치료 방법 중 심방에서 발생한 전기신호가 무질서하게 심실로 전달되는 것을 막아 한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만들어 주는 '메이즈(Maze: 미로라는 뜻) 수술법'의 성적이 가장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방에 살짝 절개를 가하면 상처가 생긴다. 이때 생긴 반흔(흉터) 부위에는 전기신호가 전달되지 않는다. 이런 점을 이용해 일부러 심장에 상처를 내고, 그쪽으로 전기신호가 흐르지 않도록 만든다. 동방결절에서 발생한 전기신호가 마치 유일한 통로인 '미로'(迷路)를 지나 방실결절에 전달돼 심실이 규칙적으로 수축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미로를 만드는 방법에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 하나는 사타구니에 있는 대퇴동맥을 통해 지름 3.5㎜의 가는 전극(카테터)을 심장까지 집어넣은 뒤 고주파 에너지로 심방 조직에 화상을 입히거나, 냉동요법으로 조직을 손상시켜 절개와 같은 효과를 얻는 '전극도자 절제술'이다.
다른 접근법은 외과적으로 가슴을 열어 심방조직에 직접 반흔을 만드는 방법이다. 주로 심장판막질환이나 관상동맥질환으로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 동반해서 시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필규(가명'65) 씨는 '승모판막 폐쇄부전'(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의 승모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피가 거꾸로 흐르는 증상) 진단을 받고 오랜 기간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다. 평소 별다른 증상 없이 잘 지내왔지만 발작성 심방세동이 생기면 심한 호흡곤란을 겪어서 몇 차례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최근 이런 증상이 잦아져 수술을 결심했다.
우선 판막질환에 대해 수술적 교정을 하기로 했다. 수술은 승모판막 성형술과 메이즈 수술을 함께 시행했다. 수술 후 6개월 동안만 항응고제를 복용했다. 현재 박동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심부전 증상도 없이 건강을 회복했다.
◆수술에 따라 장단점 따져 판단해야
김씨의 경우처럼 심장판막질환으로 수술을 받는 환자에서 메이즈 수술을 동시에 시행할 경우 수술 후 뇌졸중 발생률이 판막수술만 받은 환자보다 70%나 낮고, 좌심실과 삼첨판막(우심실과 우심방 사이의 판막)의 기능도 향상돼 전반적인 심장 기능이 월등히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보고됐다. 심방세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치료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계명대 동산병원 흉부외과 박남희 교수는 "다만 메이즈 수술에 사용되는 냉동절제를 위한 기구가 우리나라 건강보험에서 인정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돼 수백만원의 경제적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점은 하루빨리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전극도자 절제술'을 이용한 메이즈 수술을 절개나 전신 마취가 필요 없기 때문에 매우 매력적이다. 하지만 심장질환이 없는 환자에게 심방세동만 치료하려고 이 수술법을 적용하려면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다. 우선 ▷수술시간이 길기 때문에 방사능에 지나치게 노출될 수 있고 ▷다수의 환자에게서 두 차례 이상 반복 시술해야 하며 ▷심장 천공(심장 벽에 구멍이 뚫려서 피가 밖으로 뿜어나오는 것) 등의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박남희 교수는 "가슴을 여는 수술법은 정상박동 전환율이 90%에 이르는 등 좋은 결과를 보이지만 환자에게 큰 부담을 주기 때문에 이것 역시 심방세동만 치료하려고 적용하기에는 부담스럽다."며 "이런 단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흉강경이나 로봇을 이용해 가슴에 2, 3개의 구멍만 내는 수술법이 2000년대 초반부터 시도됐다"고 했다.
박 교수는 또 "최근 들어 내과적인 고주파 전극도자 절제술과 외과적인 최소 절개 수술법을 심장의 필요 부위에 적절하게 적용하는 하이브리드 수술법이 소개되면서 점차 치료 성공률을 높여 가고 있는 만큼 빠른 시간 내에 표준화된 치료법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흉부외과 박남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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