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더 어둠이 짙어지는 겨울 아침. 따뜻한 이불 속의 온기를 떨치고 일어나기가 어려워진다. 누군가 따뜻한 한 잔의 커피를 침대 곁에 놓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순간이다. 새로운 하루를 열어주고 다시 세상을 향해 걸어나갈 기운을 주는 커피 한 잔을 매일 아침 건네주는 누가 있다면, 또 그 한 잔을 건네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참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럼 한 잔의 맛있는 커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요소가 필요하지만, 크게 세 개의 범주로 나누어진다. 원재료가 되는 생두, 생두를 볶아내는 로스팅, 볶아진 원두를 음료로 만드는 추출 과정.
생두를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떤 종(種)이며, 어떤 기후와 토양에서 자라나, 어떤 처리 과정을 거친 생두인지에 따라 맛은 물론 가격 또한 천차만별이다. 산지에서 소비지로 이동되는 과정에 포장백의 재질과 냉장 유통 여부 또한 생두의 품질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얼마 전 지면에 오르내리던 코끼리 똥 커피의 경우 ㎏당 100달러를 호가하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가격은 8달러에서 10달러 정도다. 물론, 가격과 맛이 정비례하지는 않겠지만, 파종부터 수출까지 철저히 관리되어 생산되면 가격이 그에 비례하여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한 그루의 커피나무로 자라나 상품성 있는 열매를 수확하기까지 최소 3년에서 5년이 걸리며, 수확 후 여러 단계 가공을 거쳐 소비지까지 운송되는 데는 적게는 2개월, 길게는 4~5개월이 소요된다. 한 알의 연둣빛 생두를 소비지에서 만져 보는 데는 이처럼 긴 시간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된 생두는 열로 볶는 과정을 거쳐, 흔히 커피라고 할 때 떠오르는 갈색 원두가 된다. 로스팅 과정 또한 쉽지 않아 여러 번 샘플 작업을 통해 생두의 선도'밀도 등을 이해하고, 특별한 맛의 경향을 찾아야 한다. 평균 10~15분이 소요되는 전체 과정 중 때로 몇 초 되지 않는 찰나를 놓쳐 비싼 생두를 버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 작업에 20㎏의 원두 생산 머신을 쓰는 나의 경우, 잠깐의 실수로 2천 잔의 행복이 한순간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아직도 로스팅 머신 앞에 서면 긴장되고 두근대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이제 추출 과정이다. 일반 커피 애호가들이 직접 커피의 맛을 결정할 수 있는 단계다. 생두와 로스팅은 전문가들의 분야이지만, 추출 과정은 누구든 쉽게 경험해 볼 수 있다. 원두의 선도와 맛의 경향에 따라 추출 도구, 추출 수온, 추출 방법 등을 계획해 한 잔의 커피를 만든다. 최고의 생두를 최고의 전문가가 로스팅하여 준비된 원두라도, 추출에 따른 맛의 차이는 긴 시간 공들여 원두로 만들어지는 모든 수고를 무색하게 한다. 핸드드립으로 한 잔의 커피를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2분 전후라고 볼 때 셋 중 가장 짧은 과정이지만 긴 시간 여러 사람이 수고로이 만들어 낸 커피가 한 잔의 음료로 만들어진 결과물에 치명적인 결함을 줄 수도, 완벽한 마무리를 할 수도 있는 순간이 된다. 이런 긴 시간과 노력으로 맛있는 한 잔의 커피가 내려진다.
한 해가 간다. 마냥 흘려보내고 새해를 기약할 수도 있겠으나 이제 남은 한 달이 내겐 아직 한 번 더 2012년이라는 한 잔의 커피 맛을 좌우할 수 있는, 추출 과정처럼 느껴진다. 닳아진 다이어리 첫 장을 뒤적여보면, 새해 첫 마음으로 결심했던 여러 계획이 있으며, 일상의 기록엔 그 계획들이 어떻게 무산되고, 진행되고 있는지가 보인다. 지키지 못했던 일들은 실패의 원인을 찾아 다시 시도해 보고, 진행 중인 계획들은 잘 마무리해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다. 습관을 바꾸는 데 필요한 시간이 21일 정도라고 하니 나쁜 습관 하나를 버리고 좋은 습관을 가질 수도 있고, 어쩌면 몸무게 2~3㎏ 줄이기, 한 달에 세 권 이상의 독서, 소원했던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저녁 약속 정도라면 충분히 다시 계획해 완벽히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 11월이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등장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마음을 분주하게 하지만 아직 올해의 끝은 아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올 한 해를 조금 더 탄탄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러니 아직은 응답마라, 2012.
안명규 커피명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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