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청백리 황희(黃喜'1363~1452) 정승은 성군 세종대왕을 잘 보필해 세종(世宗)이 선정을 펼치는 데 크게 기여했던 분이다.
본관이 전라도 장수이고 개성 출신인 공의 후손들이 경상도 상주에 뿌리를 내린 것은 둘째 아들 보신(保身'1401~1456)이 1441년(세종 23년) 상주 모동면 수봉리 처향에 정착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익성공(翼成公'황희 정승의 시호)의 사돈인 홍여강(洪汝剛)에 대해 '상산지'는 '보문각(寶文閣'1420년 즉 세종 2년 집현전으로 통합되기 전 경서를 강론하고 장서를 맡아보던 기관)의 직학사(直學士)를 역임했고 문장에 능했다'고 했다. 비록 벼슬을 높게 하지 못했지만 문장에 능하고 성품이 매우 강직해 재상가와 혼인을 맺을 만한 분이었던 것 같다.
늦은 가을, 문경으로 향했다. 길이 멀지 않아 봄이나 여름에 찾을 수도 있지만 보고자 하는 나무가 '문경 장수 황씨 종택의 탱자나무'(경북 기념물 제135호)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꽃이 피는 나무는 꽃을 달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그 나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잘 표현한다. 이런 점에서 나뭇잎도 크지 않고 꽃도 화려하지 않은 탱자나무는 노란 열매를 달고 있을 때 진면목을 완상할 수 있다. 특히 잎을 다 떨어뜨리고 탁구공만한 노란 열매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달고 있을 때에 가장 돋보인다. 가시가 있어 접근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까이하지 아니하였던 탱자나무의 본연의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종택(경북 문화재자료 제236호)은 의외로 정갈했다. 왼쪽에 서 있는 큰 탱자나무가 한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울타리로 심어진 탱자나무와 달리 보기 드문 홀로 선 노거수였다. 두 그루라고 했으나 한 그루처럼 포개져 자라고 있었다.
종손 규욱 씨에 의하면 몇 년 전 시행한 외과수술(나무가 더 이상 썩지 않도록 방부제를 처리하고 인공수피를 붙이는 등의 작업)로 오히려 수세가 더 나빠지고 있다고 한다. '궁궐의 우리 나무' 저자인 박상진 교수가 외과수술을 한사코 반대하는 이유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무는 칠봉(七峯) 황시간(黃時幹'1558~1642)이 심었다고 한다. 400여 년의 긴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명문의 자존심이 되어 하늘을 받치며 늠름하게 자라온 나무다.
칠봉에 대한 '상산지'의 이력도 역시 매우 간단했다. '익성공(翼成公) 희(喜)의 7세손이며 1605년(선조 38년) 생원이 되고 정랑(正郞)을 하였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였으나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학문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호는 도천(道川) 또는 칠봉(七峯)이며 도천사에 봉향하였다. 이다'는 것이 전부였다. 우복 정경세와 창석 이준, 사서(沙西) 전식(全湜)과 더불어 '상산4로'(商山四老), 즉 상주를 대표하는 원로의 한 분인 것에 비하면 너무 소략하다는 느낌이 든다.
임란 시 의병으로 활동한 사실이 최근에 밝혀져 앉아서 책만 읽는 선비가 아니라 나라 걱정에도 앞장선 분임을 알 수 있다.
2004년 '팔공산상암임란창의제현행록'(八公山上庵壬亂倡義諸賢行錄)이 발간되었다. 1596년(선조 29년) 9월 15일 대구의 의병장 서사원을 비롯한 경상도 일원의 선비 32명이 팔공산 상암(上庵)에 모여 왜적토벌의 결의를 다지며 각기 본인의 자(字)를 넣어 오언구(五言句)를 지어 32명이 한 편의 연작시를 완성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그때 칠봉은 상주 대표로 우복 정경세와 함께 참여했다.
종택에는 황희 정승의 손때가 묻은 유품으로 '장수 황씨의 3대 보물'로 일컬어지는 옥연(玉硯'옥으로 만든 벼루), 옥서진(玉書鎭'글씨를 쓸 때 종이가 날리거나 흐트러지지 않도록 누르는 옥돌), 산호영(珊瑚纓'산호로 만든 갓끈)을 전승하고 있다. 호란과 왜란, 한국전쟁 등 나라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용하게도 500여 년을 간수해 왔으니 깊은 숭조 정신에 머리가 숙여지지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종가에서 직접 만드는 가양주 호산춘(湖山春)은 품격 있는 고급술에만 붙여졌다는 '춘'(春)자가 들어가는 조선 명주이다. 후손들의 노력으로 아직도 맥을 이어오고 있어 애주가들에게 호평받고 있다. 긴 세월에도 끊임없이 열매를 맺는 탱자나무처럼 장수 황문(黃門)은 자손이 번창했고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종택의 탱자나무는 또 다른 장수 황문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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