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거창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멋있게 받아들이는 반면에 현실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쪼잔하게(?) 여길 정도로 거대담론(巨大談論'grand discourse)에 익숙한 사회가 되었다. '담론'은 푸코(M. Foucault) 등에 따르면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뜻으로 이론 혹은 패러다임과 유사하다. 따라서 거대담론은 현실의 모든 요소를 설명할 수 있는 거대한 이론 혹은 패러다임이다. 모든 현실의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이런 담론이 있다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여기에 거대담론의 문제가 있다.
즉 현실의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문제도 정확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거대담론은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할 것 같지만 사실상 너무나 작위적이고 규범적이기 때문에 종종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 '현실에 적용할 수 없는 규범'이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거대담론을 'one-size-fits-all' 모델이라고도 표현한다. 세상은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하나의 모델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거대담론에 대한 선호 현상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는 자주 메가트렌드에 함몰되는 경향이 있다. 과연 앨빈 토플러나 존 나이스비트류의 거대한 메가트렌드(mega trend'거시경향)를 좇아가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인가.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몇몇의 거대한 트렌드가 있다는 개념은 이제 무너졌다. 우리 모두를 휩쓸고 몰아가는 메가트렌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 세계는 얽히고설킨 미로와 같은 선택들에 의한 마이크로트렌드(micro trend'미시경향)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마크 펜(힐러리 클린턴의 참모)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의 미래 경쟁력은 메가트렌드가 아니라 쫀쫀한(?) 마이크로트렌드 즉 작고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을 짊어지고 힘겨워한다. 모였다 하면 국정 전반에 걸쳐 전문가연하는 식견과 주장을 쏟아내느라 바쁘다. 한때는 줄기세포,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경제위기, 세종시, 기후변화, 저탄소 녹색성장 등을 입에 달고 살았었는데 이제는 박근혜 정부의 5대 국정과제에서 경제민주화가 빠진 것이 화두가 되고 있다. 자신의 집값을 포함한 집안 경제나 자녀 교육, 집 주변의 눈 치우기, 자신이 사는 지역의 예산 지출이나 지역 정책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런 것에 눈 돌리기에는 우리의 스케일이 너무 큰 듯하다. 정작 지역 정책이 잘못되면 우리 재산의 70, 80%가 잠겨 있는 집값이 내리거나 전세가 나가지 않게 돼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적인 것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서 실천 의지와 공약 실천 방향, 이행 계획 부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해명성 설명은 차치하고 5대 국정과제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빠졌다고 과연 우리 생활이 구체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있는가?
'자본론'의 저자인 마르크스(K. Marx)가 말한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데 골몰해왔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는 경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렇다. 진정으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고 이를 집행하는 능력, 거대 프로젝트가 아니라 우리의 피부에 와 닿는 생활형 프로젝트다. UN과 세계적 석학들 및 개발도상국들이 빈곤 퇴치의 롤 모델(role model)로 여기는 새마을운동이 성공한 것도 바로 거대한 이론, 주장, 관념보다는 실천, 행동을 중시하였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은 "나부터,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쉬운 것부터, 가까운 것부터"라는 이른바 '5부터 실천운동'으로 국민의 가슴에 와 닿고 알기 쉬운 생활 실천 요목들을 강조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이 희망의 새 시대를 열어 국민 모두가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라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힘을 좀 빼고 스케일을 줄여서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소박한 생활정치, 생활행정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너무 큰 얘기에만 매달리는 거대 프로젝트보다는 구체적 변화와 개선이라는 실리를 추구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을 기대한다.
이재훈/영남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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