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문상을 하러 갈 때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문상하는 사람들과 상갓집 사람들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슬퍼한 나머지 문상객을 맞이하는 일이나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일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를 보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는 슬프지만 온 가족이 조용하게 슬픔을 이겨내며 차분하고 질서 있게 장례절차를 진행, 문상객들을 잘 맞이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럴 때 떠오르는 단어가 공자가 말씀하셨다는 '애이불상' 이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 난 지 10년이 지났다. 사고를 당한 가족들은 물론 모든 시민들에게 너무나도 큰 슬픔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그때 생각난 단어도 애이불상이었다.
5년 전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다. 많은 국민이 큰 슬픔에 잠겼으며 마치 내 가족이 돌아가신 것처럼 애도의 물결을 이루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상복 차림으로 화재 현장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때도 생각난 단어가 바로 애이불상이었다.
이 말의 뜻은 대충 '슬퍼하되 도를 넘지 아니하다' 즉 슬픔의 도가 지나쳐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큰 슬픔을 당했을 때 슬픔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보다 그 슬픔을 직시하며 잘 극복하려고 노력하며, 무엇보다 다시는 그러한 슬픔을 겪지 않기 위해 방지책을 마련하며, 그것이 잘 실행되고 있는지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앞에는 언제든지 제2의 지하철 참사, 숭례문 화재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3'1절이 돌아왔다. 이 기념일의 배경에는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역사는 우리 자손만대에 기억시켜 다시는 그러한 슬픔을 당하는 우를 범하지 말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슬픈 역사에 대한 우리의 억울하고 분한 감정은 넘치지만 객관적이고 냉정한 판단과 분석 위에 선 일본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2% 부족한 느낌이다. 우리가 이러한 어정쩡한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 일본은 다시 독도를 빌미로 자신들의 추한 내면을 부끄럼 없이 국제 사회에 드러내었으며 우리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일본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의 현대사는 슬픈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 대하여 슬퍼하고 분노하기만 했지 그 슬픈 역사에 대하여 철저히 분석하고 대처하여 다시는 후손에게 그러한 역사를 물려주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이 독도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의 준비된 대처가 부족하게 된다면 우리 후손들은 또다시 3'1 독립 만세를 불러야 하는 슬픈 역사를 되풀이할지도 모른다.
김상충(성악가'이깐딴띠 음악감독) belcanto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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