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다

'아름다운 인연일수록 소유하려 하지 말라.' 얼마 전 TV 드라마에서 나온 어느 캐릭터의 멘트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오는 동안 나는 과연 얼마나 욕심을 버리며 살았는가? 문득 그 장면이 떠올라 여러 가지 일들이 연상되었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건 그리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세속을 떠나 법문을 익히는 스님이 있다. 유학산 산자락, 우두커니 자리한 스님의 거처에는 세상을 질타하는 수많은 시(詩)를 들을 수 있다. 그의 글 대부분은 일침을 가하는 선시 같은 독특한 시어들이다. 거기에다 겸상을 받듯 거침없는 욕을 한 움큼씩 양념처럼 얹어내는 욕쟁이 스님의 덕담(?)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의 몸은 온전치 못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장기는 모두 기증해 주었기 때문이다. 넓은 산과 들을 끌어안은 오롯한 절 마당이 그에겐 유일한 안식처다. 굳이 가지려 하지 않아도 바람과 햇살의 그림자들이 왔다 간다. 사람이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다. 더구나 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터.

오랜 시간 허물없이 지내던 모임이 한사람의 일방적인 주도로 깨어졌다. 아무런 이유도 모른 체, 아니 어쩌면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때론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모르는 척 그렇게 넘어가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어찌되었든 주장하는 이의 뜻대로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만 내고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묵은 사람이 좋다는 것을 누군들 모르겠냐만 우린 가끔 자신도 모르게 가까운 이들로부터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정이 메말라가는 탓도 있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한낱 작은 이기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닌가 싶다.

그 이후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조심스럽고 겁이 난다. 이런 생각조차도 어찌 보면 이기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버려서 물질적 덕을 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버림으로써 정신적 편안함과 힘을 얻는 이도 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이(利)를 위해 여럿을 버리고 다른 한 사람은 의(義)를 위해 자신을 버리니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것인가.

또다시 봄이 오고 있다. 겨우내 덕지덕지 들러붙은 묵은 때가 벗겨지듯 새순이 돋는다. 조만간 스님이 계신 곳으로 나의 이기심을 덜어내러 갈 생각이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있다는 뜻이다' -법정 스님

윤경희<시조시인 ykh646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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