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웃지 않는 대통령

평소보다 톤을 높인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급기야 쇳소리가 섞이며 갈라졌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세워 허공을 찍어 누르듯 흔들더니 어느새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연단을 '꽝' 하고 내려치기도 했다.

취임 1주일 만인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조직법 개편안의 국회 통과를 호소하는 '대국민 담화' 발표 모습은 결연하다 못해 무서웠다. 담화문 발표장 주위에 있던 참모들과 출입기자들은 박 대통령의 평소 같지 않은 모습에 당황했다고 했다. 특히 연단을 내려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고도 했다. '소름 끼칠 정도였다'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삼고초려(三顧草慮)를 하다시피 모셔온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돌연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데에 잔뜩 화가 났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신중해야 한다. 이날 박 대통령의 화난 모습을 봐야 했던 국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예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석 달 만에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고 투덜댔던 것을 떠올렸을 법하다.

국회에 출입하면서 가까이서 지켜봤던 박 대통령은 웃음이 보기 좋은 사람이었다. 수줍은 듯하면서도 다소곳한 표정으로 눈과 입을 통해 웃음 짓는 그의 모습을 보며 '박근혜 지지자들은 이런 미소에 매력을 느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박 대통령의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졌다. 굳은 표정 일색이다. 주위에서 어떤 비판을 해도 나는 내 갈 길을 가겠다는 결연함만 보인다. 지난 대선 때부터 따라다닌 '불통'의 이미지가 더욱 굳어지는 모습이다. 이러다간 '국민 행복시대'는 고사하고 이명박 정부 때의 촛불시위, 노무현 정부 때의 대통령 탄핵 등 나쁜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다.

요즘 정치권에서 화제가 되는 영화가 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미국에서의 칩거를 끝내고 귀국하면서 연 첫마디가 '링컨을 감명 있게 봤다'였다. 가방 끈도 짧고, 인물도 처지며, 말도 어눌했던 링컨이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이름을 오랫동안 남길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영화는 잘 설명하고 있다. 바로 링컨의 포용력이다.

이 영화의 원작인 도리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Team of Rivals)에는 링컨의 포용 정치를 전해주는 일화가 많다. 굿윈은 링컨의 정치력이 보수주의자로부터 극단적 급진주의자까지 모두 아우르는 데서 나온다고 썼다. 링컨은 적을 만들지 않았고, 중도주의적 정책을 한결같이 펼쳤으며, 자신과 치열하게 경쟁했던 라이벌을 중용하면서 현안들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내가 옳으니 무조건 믿고 따라오라'며 짐을 어깨에 잔뜩 짊어진 박근혜 대통령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박 대통령이 마음을 비우고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국민들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가자고 했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 본인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주위에서도 그를 도와야 한다. 참모들은 더 이상 '예스'로만 일관해선 안 된다. 대구경북 지역민들도 지역 출신 대통령이라고 '편애'만 해서도 안 된다. 취임 한 달을 맞은 지금의 박 대통령은 무거워도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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