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르 헤르츨은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시오니즘을 정치적으로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1860년 오늘,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신문기자 겸 작가로 활동했다. 반유대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겪던 그는 프랑스에서 신문사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혁명의 본 고장에서도 반유대적인 분위기가 팽배한 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원래 유대인이 현지인들과 동화돼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건을 겪고 나서 시온주의자가 됐다.
1896년 2월에 그는 '유대인 국가'라는 소책자를 펴내 유대인 문제는 세계가 해결해야 할 정치적인 문제라고 제창했다. 그 해 8월, 오스만 튀르크의 군주에게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넘겨달라는 부탁을 하러 가 만나지 못했으나 이 일은 그를 시오니즘의 정치적 지도자로 만들었다. 이듬해에 스위스의 바젤에서 '시온주의자 세계 대회'를 열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노선은 당시에 다른 길을 추구하던 유대인 지도자들로부터 배척당했고 심지어 정신 나간 구상이라고까지 외면당했으나 동조하는 유대인들도 갈수록 많아졌다. 1904년, 그가 심장병으로 44세의 이른 나이로 숨진 후 시오니즘의 불길은 더 타올랐다. 그의 사후 44년 만에 이스라엘이 건국했고 빈에 있던 그의 유해는 이듬해 이스라엘로 옮겨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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