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숭례문 스토리텔링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 박물관은 수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집트의 미라나 조각상은 물론, 훌쩍 떨어진 신라의 금 귀걸이, 고려의 불상까지 전시돼 있다.

현대의 미술품들은 박물관이 구입하거나, 기증받은 것들이다. 하지만 고대의 문화재는 두 단계를 거쳐 전시대에 오른다. 첫째는 제국주의 시대 3세계에 주둔한 군대가 직접 약탈하거나 헐값의 매입을 통해 1세계 소장가의 손으로 넘어가는 단계이다. 그다음은 소장가의 손에서 판매나 기증을 통해 박물관으로 흘러들어 가는 단계다. 파리의 어떤 소장가가 고대 이집트의 유물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면 이타적 행위로 칭찬받는다. 하지만 그 전에 이루어진 약탈에 대해 그는 전혀 책임이 없을까?

장물을 취득하는 것은 불법이다. 장물인지 모르면 불법이 아니다. 장물인지 알고 사서 이익을 봤다면 불법적이고 이기적이다. 장물인지 모르고 이득을 목적으로 샀다면 그냥 이기적이다. 장물인지 알고 사서 빈자에게 나누어 주었다면 불법이지만 이타적이다. 장물인지 모르고 사서 나누어 주었다면 그냥 이타적 행위이다. 그렇다면 이집트의 유물을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프랑스 수집광의 행위는?

기증한 문화재가 애초에 약탈됐다는 사실을 그는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장물 취득죄는 '장물인지'의 기준을 '장물일 수도 있다는 개연성'에 둔다. 초등학생이 파는 금반지를 산 사람은 '장물일 수도 있다'는 의심의 의무가 있다. 이집트의 유물을 사라고 파리의 한 골동품상이 권유할 때, 구매자는 마땅히 그것이 최초의 시점에서는 '약탈된 것일 수 있다'는 의심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그의 행위는 일단 장물인지 알고 구입해서 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행위는 이타적일까? 프랑스 안에서는 이타적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이 굳이 이집트에 가지 않고도 미라를 볼 수 있고, 중동까지 가지 않고도 아시리아나 페니키아의 유물들을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당해 본 우리는 피해자의 위치를 경험했기에 안다. 그들만의 이타성이 사실은 집단적 이기심임을. 기증이 진정 이타적이려면 문화재가 찾아가야 할 곳은 루브르가 아니라 이집트의 박물관임을.

약탈된 문화재가 제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이유는 단지 최초의 소유권 때문만이 아니다. 제자리를 잃은 문화재는 이미 문화재가 아니다. 골동품에 불과하다. 차이는 들판에 핀 꽃과 거실 벽에 걸어 놓은 조화만큼 크다. 문화재는 우리가 과거의 사람을 만나러 가는 시간 여행의 정거장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 나의 삶이 과거의 누군가와 맞닿아 있고, 미래의 누군가와도 마침내 통하리라는 역사의식을 통해 사회적 삶의 의미를 만든다. 문화재는 단절된 과거와의 만남을 복원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골동품은 모든 과거의 삶으로부터 뿌리 뽑혀 현재 속에 던져진 사물에 불과하다. 여기에 탐닉하는 것은 복고적인 포르노 취향일 뿐이다. 그러니 세계의 문화재가 모인 루브르 박물관은 어쩌면 과거와 단절되는 장소, 사람을 사물이 대체하는 장소, 문화재가 볼거리로 전락하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5년의 공사 끝에 숭례문이 복원됐다. 감쪽같이 원형이 복구됐다. 그렇다. 사물은 사라져도 다시 재현될 수 있다. 오히려 시간 속에서 스러지지 않는 사물이 있다면 썩지 않는 시체처럼 낯설 것이다. 진본의 물질성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일종의 시체애호증(necrophilia)이다. 중요한 것은 문화재가 뿌리 내리고 있는 과거의 삶과 사람을 만나고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문화재를 관광자원, 역사교육의 현장, 국가적 자존심의 징표 등등의 기능적 용도로만 대우한다. 거기에는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이 빠져 있다. 조선 태조는 있지만 숭례문을 세운 무명의 장인들 이야기는 없다. 왕조의 서사를 역사로 이해하면, 숭례문을 보고 가진 자부심은 자금성을 보는 순간 열등감으로 바뀐다. 문화적 주체성은 과거와 현재의 무명의 삶들이 빚어내는 수많은 스토리가 얽혀 굵은 동아줄이 될 때 생긴다. 숭례문 복원이 구경꾼에서 스토리텔러로 감상의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싶다.

남재일/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 comma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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