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대법원 앞뜰에 해태 뿔과 꼬리를 조형화한 청동 조각상이 서 있다. 해태는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전설의 동물로 이 조각상은 법의 엄격성과 존엄성을 표현한 것이다. 대법정 출입문의 '정의의 여신상'도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데 양손에 저울과 법전을 들고 있다. 이는 공평한 법 집행 즉 사법 정신을 상징한다.
옛 선조들의 법 정신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출입'이라는 말이 좋은 예다. 법관이 형벌을 쓰는 데는 '출'(出)과 '입'(入)이 있는데 둘 다 정당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출은 중죄를 가볍게 처벌하는 것이고, 입은 경죄를 중형에 처하는 것이다. 단순히 양형의 차원을 넘어 법의 형평성과 정의, 위민의 의미가 담겨 있다.
'고려사'에 보이는 손변의 고사는 무엇이 옳은지조차 구별하기 힘든 현대 사법 환경에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손변은 고종 때 좌복야(정2품)를 지낸 인물로 사무가 바르고 판결이 물 흐르듯해 명성이 높았다. 경상도 안찰 부사일 때 남매의 해묵은 재산 송사가 있었다. 누나가 유산을 독차지하고 동생에게는 고작 검은 옷 한 벌과 갓, 미투리, 종이 한 권뿐이었다.
부사가 둘을 불러 아버지 임종 때 각각의 나이를 묻고는 말했다. "부모 마음은 아들, 딸이 다르지 않은데 출가한 딸에게만 후하게 주고 어린 아들에게는 어찌 박할까"라며 "혹 재산을 똑같이 나눈다면 어린 동생에 대한 누이의 사랑이 온전하지 못할까 두려워함이다. 아들이 장성해 소장을 쓰고 의관 정제해 관가에 송사하면 될 일이라는 뜻에서 네 물품만 물려준 것"이라고 판결했다. 남매가 깨닫고 재산을 나눴다는 이야기다.
모든 판결이 손변의 것과 같을 수는 없다. 재판에 간혹 실수나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법 절차에 따른 판결임에도 불복해 판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를 상대로 한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소송 대리인 선임제를 시행한 결과 2007년 이후 5년간 55건에 달했다.
공판 중 피고인의 육두문자에 젊은 여검사가 "개××야" 욕설로 응수하고 피고인이 검사를 모욕 혐의로 고소하는 마당이니 요즘 법조계가 처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의 권위가 무시되고 법정이 경시되는 이런 풍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법과 정의는 법의 권위와 바른 법 집행에 기초한다. 어느 한 쪽도 구멍 나지 않도록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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