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패티김(75'여) 씨가 부른 '능금꽃 피는 고향' 노래비 건립이 추진되는 가운데 이 노래의 작사'작곡자이자 패티김 씨의 전 남편인 길옥윤(1927~1995) 씨와 노래비 건립추진위원회 고문인 문희갑(76) 전 대구시장이 막역한 사이였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미국에서 첫 만남, 달성을 인연으로=문 전 시장과 고 길옥윤 씨와의 인연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 전 시장은 경제기획원에서 예산실장으로 근무하던 1983년 세미나 참석을 위해 미국 예일대를 방문했다. 같은 시기 길 씨도 재즈로 유명한 예일대에 음악여행을 와 있었다.
우연히 상봉한 두 사람은 반가움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평안북도 연변군이 고향인 길 씨가 6'25전쟁을 피해 대구 달성군 가창면에 와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 전 시장의 고향도 같은 달성군 화원이었다. 길 씨는 달성에서 생활하면서 쌓았던 추억의 보따리를 풀었다. 달성이라는 공통점이 생긴 두 사람은 급격히 친해졌다.
이를 계기로 각자 한국에 돌아와서도 자주 왕래했다. 문 전 시장은 길 씨가 서울 강남에 차린 가게에 자주 들렀다. 두 사람은 대중예술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함께 달성을 노래하다=두 사람의 인연은 달성 방문으로 이어졌다. 1987년 문 전 시장은 달성'고령'성주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결심을 하고 주말마다 서울에서 달성으로 내려왔다. 문 전 시장이 "고향에 내려가 정치를 할 것"이라고 하자 길 씨는 시간을 내 함께 내려와 주었다. 두 사람은 비슬산 정상에 자주 올랐다. 문 전 시장은 산을 오르내리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옆에는 길 씨가 있었다. 길 씨가 피란 시절 머물렀던 가창의 집에도 함께 찾아갔다.
같은 해 두 사람은 합심해 '달성의 찬가'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어느 날 비슬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길 씨가 먼저 "달성에 대한 노래를 작곡하겠다"며 문 전 시장이 작사를 맡아 줄 것을 제안했다. 그 후 문 전 시장은 길 씨의 곡에 가사를 붙였다. "푸르른 하늘 드높이 비슬산은 솟아오르고 맑은 물 굽이굽이 낙동강은 흘러간다~ 정다운 달성 우리 마음의 고향."('달성의 찬가' 중에서) 길 씨가 몇 소절을 손본 뒤 곧바로 음반으로 발표했다. 이 노래는 달성군에서 열리는 행사 때 자주 불리면서 군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때 건강이 나빠져 부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길 씨는 문 전 시장에게 '달성의 찬가'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문 전 시장은 카세트테이프를 찾아 한달음에 부산으로 내려갈 정도로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다.
◆문 전 시장과 패티김 씨=1995년 3월 길 씨가 세상을 등지면서 두 사람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이가 됐다. 그로부터 18년이 흐른 올해 노래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문 전 시장은 패티김 씨와 만났고, 길 씨를 다시 떠올렸다. 패티김 씨와 길 씨는 1966년 결혼했다가 6년 뒤 이혼했다. 두 사람의 짧은 결혼 생활 중에 나온 노래가 '능금꽃 피는 고향'(1971년)이다. 문 전 시장과 패티김 씨에겐 인연의 공통분모가 바로 길 씨인 것.
문 전 시장이 길 씨와의 인연을 털어놓자 패티김 씨는 놀라면서 반가워했다. 두 사람은 길 씨에 대한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감회에 젖었다. 먼저 세상을 등진 길 씨에 대한 아쉬움도 나눴다. 6'25전쟁 피란시절 대구에서 초'중학교를 다녔던 패티김 씨는 문 전 시장과 기회가 되면 자주 만날 것을 약속했다.
평소 대외활동을 잘 하지 않던 문 전 시장이 노래비 건립에 선뜻 발 벗고 나섰던 것도 길 씨와 인연 때문이다. 문 전 시장은 길 씨가 연주하던 악기인 색소폰을 직접 배웠고 악단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악단과 함께 노래비 앞에서 길 씨의 음악을 연주하길 소망했다.
문 전 시장은 "북에서 내려와서 머물렀던 대구는 길옥윤 씨에게 제2의 고향이었고 특히 '능금꽃 피는 고향'은 대구에서의 추억이 선물한 작품이다"며 "길 씨는 평소 대구의 넓은 사과밭과 우뚝 솟은 팔공산,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에 대한 깊은 인상을 이야기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재만 대구 동구청장은 "단순히 비를 세우는 데 끝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 세 사람의 인연과 대구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게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겠다"며 "앞으로 노래비와 함께 리모델링 중인 아양철교가 완성되면 일대가 대구의 명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세 사람의 인연이 담겨 있는 노래비는 올 10월 금호강을 가로지르는 대구 동구 아양철교 주위에 들어설 예정이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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