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이로 살아가는 여자의 인생도 보람 있어요. 요양원에서 각설이 공연을 하면 어르신들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매우 즐거워해요."
대구 서구 평리동 사랑마을요양원 3층. 분홍색 윗옷과 검은색 치마를 입고 빨간 모자를 쓴 여자 각설이가 트로트곡 '사랑은 나비인가봐'를 부르면서 한바탕 신명나게 놀고 있다. 80, 90대 할아버지와 할머니 50여 명이 공연을 펼치는 각설이 주변에 빙 둘러 앉아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 각설이가 노래 중간에 '어르신, 있는 돈 자식 줘봤자 아무 소용 없어요. 그 돈으로 맛있는 음식 맘껏 드시고 예쁜 옷 사입고 하세요'라고 멘트를 날리자 어르신들도 '맞네'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각설이는 노래 몇 곡을 더 부른 뒤 어르신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면서 '건강하고 오래 사시라'는 인사와 함께 공연을 마쳤다. 각설이는 어르신들에게 큰절을 올리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노래하는 각설이' 이희주(50) 씨. 그는 아는 노래만 대중가요와 민요를 합해 무려 3천 곡이 넘는다. 또 입담도 좋아 재치가 넘치고 품바 춤은 늘씬한 키에 어울리듯 시원스럽다. 그는 지역에서 노래하는 여자 각설이로선 으뜸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10년 동안 매월 요양원을 찾아다니며 무료로 각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요양원 어르신들은 이 씨가 방문하면 노래와 해학에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핀다.
"여자가 각설이 한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지만, 각설이가 저에겐 딱 맞아요. 노래도 실컷 부르고 놀면서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가 각설이를 하게 된 계기는 우연하다. 그는 우울증 증세 때문에 노래교실에서 노래를 배우다가 지인의 소개로 창녕농산물축제장에 각설이 공연을 하게 됐다. 당시 첫 공연치고는 관객들 호응이 너무 좋아 지금껏 여자 각설이로 살아가고 있는 것. 최고의 각설이로 살아가기 위해선 피땀 나는 노력이 필수. 그는 공연이 없을 때에는 혼자 노래연습으로 실력을 쌓는다. 돈이 아까워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는다. 게임방에 설치된 노래방기기가 유일한 노래친구. 한 곡에 200원. 4천, 5천원이면 4, 5시간 실컷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춤과 멘트도 자신의 집에서 혼자 연구하며 연습한다.
"한바탕 공연을 펼쳤다 하면 6시간은 기본이에요. 일반인은 목이 아파서 상상도 못할 거예요. 각설이 자체가 즐거우니 힘든 줄 모르죠."
그는 공연봉사를 하지 않는 날이면 지방 5일장 시장을 다니며 홍보차 각설이 공연에 나선다. 공연은 한 달에 10여 일 정도. 전통시장에서도 인기가 좋아 엿도 많이 팔고 팁도 짭짤하다.
그는 각설이 봉사 외에도 달성공원 무료급식을 비롯해 장애인 시설, 농촌일손 자원봉사 등도 20년째 해오고 있다. 그는 첫 음반도 준비하고 있다. 타이틀곡은 '사랑의 흔적'. 신곡메들리 형식의 20곡 정도로 올가을쯤 선보일 예정이다.
"어릴 적부터 가수가 꿈이었어요. 노래를 부르는 각설이로 살고 있으니 꿈은 어느 정도 이룬 셈이죠. 이웃에 노래와 웃음을 선사하는 최고의 각설이로 영원히 남고 싶어요."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제대로 된 공항 만들어야…군위 우보에 TK신공항 건설 방안도 검토"
대구시 '재가노인돌봄통합' 반발 확산…전국 노인단체 공동성명·릴레이 1인 시위
최재영 "벌 받겠다…내가 기소되면 尹·김건희 기소 영향 미칠 것"
탁현민 "나의 대통령 물어뜯으면…언제든 기꺼이 물겠다"
尹, 한동훈 패싱 與 지도·중진 ‘번개만찬’…“尹-韓 앙금 여전” 뒷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