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결혼한 모기 씨. 신혼의 단꿈에 젖어 한참 행복할 때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먹고살기가 어려워서다. 배속에서 새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 새끼들을 먹일 '맛 있는 피'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지난밤에 있었던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새끼들에게 먹일 피를 찾다가 고층 아파트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큰 마음 먹고 열심히 날개 짓을 해 아파트 20층까지 올라갔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난데없이 뚱뚱하게 생긴 아줌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찍~'하고 모기약을 뿌리는 게 아닌가. 순간 어지럽고 온 몸에 힘이 빠져 나갔다. 다행히 열린 창문으로 탈출을 시도해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나올 수 있었다. 할 수 없이 옆집을 호시탐탐 노렸다. 이번에는 동그란데서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게 아닌가. '이 정도야'하는 생각에 열려진 문틈 사이로 살짝 들어가 어두운 침대 밑에서 잠복근무에 들어갔다. 한 두 시간이 지나자 은근히 숨쉬기도 어렵다. 피할 곳을 찾아봐도 마땅찮다. 오늘도 허탕이다. 주택가 이곳저곳을 둘러봤지만 철통방어 탓에 피한방울 제대로 먹지 못했다. 먼발치에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인간들을 볼 때마다 마른침만 꼴깍 삼킬 수밖에 없다.
◆공공의 적
"피를 좀 빨아 먹는다 치자. 우리가 먹어봤자 얼마나 먹나요. 한 방울도 아니고 경우 몇 방울 좀 먹는 게 미워서 인간들이 저렇게 발광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빵 한 조각에 헌혈을 하면서 말이에요."
적반하장(賊反荷杖). 먹고 살려고 하는 데 '드라큘라'나 '공공의 적' 취급을 할 때는 어이가 없다. "원래 풀잎 위에 알알이 맺힌 이슬이랑 꿀, 수액 등을 먹고 살아요. 그런데도 '드라큘라'라는 소리를 들으면 분통이 터져요. 다만 임신을 했을 때 뱃속에 꽉 찬 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동물의 피를 빨아 먹죠. 얘들이 먹겠다는데 모성애도 죄인가요?"
파리와 비교당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한다.
"여름철이면 인간들은 파리, 모기를 공공의 적으로 꼽는데 인간의 배설물 주위나 맴도는 파리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물론 족보상으로 '파리 목(目) 모기 과(科)'에 속해요. 저의 영어 이름 'mosquito'는 작은 파리란 뜻의 스페인어 'mosca'에서 따온 말이어요. 몸집은 작아도 파리보다는 훨씬 깨끗하고 도덕적입니다." 특히 외모를 갖고 놀릴 때면 '콱' 모기약을 먹고 죽고 싶단다.
"솔직히 외모가 그리 뛰어나지는 않아요. 지나치게 나온 주둥이는 제가 봐도 좀 불편해 보이고 눈 역시 외계인을 닮았다고 놀림을 받아요. 솔직히 성형수술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피를 빨기에 최적화된 모습인데 어떡하겠어요. 생긴 대로 살아야죠."
◆생긴 건 그래도 '일부종사'
"저희들을 그룹섹스나 하는 문란한 벌레로 오해하시는 분이 많아요. 아마 저희들이 암컷과 수컷이 수 백 마리씩 어울려 새끼를 갖는 과정을 보고 오해하신 것 같아요. 놀라지 마세요. 사실 암모기는 일생에 단 한번만 관계를 갖는답니다. 암컷은 몸속에 정자 주머니가 있어 필요한 만큼 정자를 꺼내 수정시킬 따름이죠. 일부종사(一夫從事)하는 곤충이 바로 모기랍니다."
인간들에게 미안하기는 하다. "제가 침을 놓을 때 좀 간지럽기는 하지요.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인간의 피는 응고가 되는데 이를 막기 위해 화학물질을 함께 주사하죠. 이 물질이 가렵게 하는 거랍니다. 그래도 조심스레 침을 놓아요. 어떨 때 침이 부러지기도 하죠."
어쩌다 단잠을 깨울 때면 빨았던 피를 내뱉고 싶은 심정이다. "모기의 생활은 군 생활과 비슷해요. '기도비닉'(企圖秘匿:조용히 안 들키고 움직인다)이 생활 모토인데 어쩔 수 없을 때가 많아요. 나름 들키지 않게 조용히 접근하지만 열심히 날개짓을 해야 날아 갈 수 있지요. 저희도 초당 몇 회씩 날갯짓하기가 쉽지 않아요. 이해해주실 거죠."
최근에는 일본에서 온 동료들 소식에 걱정이다. 지난달 일본모기들이 부산에 상륙한데 이어 계속 북상중이란 소식을 들어서다.
"사람이나 모기나 일본에서 건너오면 항상 문제를 일으키죠. 뇌염 같은 흉악한 질병. 이것도 다 일본에서 건너온 애들이 퍼트리고 다니죠. 솔직히 자기 구역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못한 한국 모기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이래저래 인간들에게 늘 미안하다. 그래서 모기 씨는 매일 밤. 잠못드는 인간들을 위해 기도한다. "인간들이 좀 물려도 가렵지 않게 하시고 빨간 자국 안나게 하고 일본애들과 뇌염도 없애주세요…."
◆BX-1 모기와의 전쟁
"대구 수성구 두산동 일대 모텔촌에 요즘 모기가 부쩍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고요? 알겠습니다. 24시간 내에 출동하겠습니다."
이달 중순 대구 수성구보건소. 해충 신고가 접수되자 보건소 방역팀 직원들은 바쁘게 출동 준비를 시작했다.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분무 살충제와 유충 구제 장비를 챙긴다. 대포처럼 생긴 연무소독 기계도 필수품이다. 주로 주택가나 청결이 필수인 어린이집, 그리고 스스로 방역 활동하기 어려운 홀몸노인 가구, 사회복지관들이 단골 민원인들이다.
서구보건소 방역팀 직원들도 이달 초 내당동의 한 복지회관에서 익숙한 솜씨로 화장실이며 침실 등을 소독했다. 뿌연 소독 연기가 방안을 가득 채우자 숨어 있던 모기떼들이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이어 방역팀은 남아 있는 유충 제거를 위해 마당 앞 한가운데 있는 정화조의 뚜껑을 열고 하얀 가루를 정화조 안에 뿌렸다. 모기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 모기와의 전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모기와의 전쟁에서는 선제공격이 최선의 방어. 각 구청들은 지난달 초부터 모기 번식을 차단하고 박멸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수성구보건소 손승학 계장은 "장마가 일찍 시작되면서 모기의 공습이 예년보다 빨라졌다. 5월초부터 집중방역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모기는 지상으로부터 6m 높이로 10㎞ 거리를 날아다닐 수 있으므로 사실상 대구에서 발생되는 모기는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다. 구청별로 동시다발적인 모기박멸 작전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bx2-모기약 진화
전쟁은 진화를 낳는다. 당연히 모기를 퇴치하는 제품도 진화하고 있다.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모기를 뿌려서 잡는 에어로졸은 1세대. 2세대는 뿌리는 방식에서 조금 더 진화한 형태로 전기콘센트에 제품을 꽂아 모기약을 교체할 수 있는 매트형. 그리고 매트를 갈아 끼울 필요가 없이 콘센트에 꽂아만 두면 되는 액체 모기향이 3세대. 한 단계 더 발전한 4세대 제품으로 꼽히는 제품이 자동분사형 모기약. 소비자가 지정한 시간 동안 모기약을 자동으로 분사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일반 스프레이 타입과 달리 입자가 작게 분사되는 마이크로 미스트 기술을 사용해 미세 입자가 공기 중에 오래 머물고 구석구석 닿아 차단 효과도 뛰어나다.
지역에서는 이미 5세대 모기약이 등장했다. 지역 업체인 전진바이오팜이 인체에 덜 유해한 천연제품으로 모기를 쫓아내는 친환경 모기퇴치제를 개발'보급하고 있다.
이태훈 전진바이오팜 대표는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물이 대표적인 성분이다. 쑥, 멀구슬나무, 씀바귀, 산초 등 산야초 추출물로 독성이 전혀 없고 까다로운 기후 조건에서도 장시간 지속된다. 반경 49.6㎡까지 향이 퍼지고 60일 이상 효능이 지속되는 제품이다"고 소개했다.
모기약의 진화에도 불구, 전문가들은 문을 모두 닫은 방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하면 사람에게도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창동 가정의학전문의는 "모기향이나 전자매트 모두 연소를 거치는 과정에서 포름알데히드가 발생하고 뿌리는 모기약 역시 분사가스에서 휘발성 물질이 나온다. 심하게 노출되면 구토, 현기증 등의 증세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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